

10년이 넘은 노래가 차트 1위? 숏폼이 만든 역주행, 데이터로 들여다보기
2025-12-14 • 이세훈
10년이 넘은 노래가 차트 1위? 숏폼이 만든 역주행, 데이터로 들여다보기
2025-12-14 • 이세훈
'앗차차, 시간이 벌써...' 오늘은 얼마나 숏폼(Short-form)에 시간을 뺏기셨나요? 좋아하는 아이돌부터 드라마 클립, 정치 경제 뉴스까지, 이제 현대인에게 숏폼은 단순히 1분 이내의 짧은 동영상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습니다.
2025년을 관통하는 음악 산업의 핵심 키워드 역시 단연 숏폼입니다. 과거 라디오와 TV, 스트리밍 서비스의 큐레이션 플레이리스트가 담당하던 음악 발견의 기능은 이제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와 같은 숏폼 플랫폼으로 완전히 이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데이터 분석 기업 Luminate의 2025년 통계에 따르면, 틱톡 사용자의 75%는 숏폼 영상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있으며, 82%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피드를 수동적으로 소비합니다. 더 이상 대중은 음악을 찾아 듣지 않습니다. 음악이 그들에게 '찾아오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신곡의 바이럴보다 더 흥미로운 현상은 '구곡의 역주행'입니다. 앞서 언급된 Luminate의 리포트에 따르면,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 진입곡의 약 84%가 숏폼 플랫폼에서 먼저 바이럴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년, 20년 전 발매된 노래라도 숏폼의 문법에만 맞는다면 언제든 현역 차트로 복귀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죠. 그런 사례들도 실제로 존재하고요!
그렇다면 과연 어떤 노래들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을까요? 최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역주행한 음악들을 밈(Meme), 챌린지(Challenge), BGM(배경음악), 라이브(Live)의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하고, 최근 떠오른 각 영역의 대표적인 곡들을 선정해 데이터를 중심으로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최근 밈의 유행은 저마다 그 기원과 확산과정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유행하는 밈의 중심에는 기본적으로 ‘B급 감성’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청각적 맥락이 결합된 '오디오비주얼(Audio-visual)' 적 요소는 15~30초 내외의 짧은 시간동안 특정한 인물(혹은 캐릭터), 서사 또는 흔히 ‘뻘하게 웃기다’는 말로 표현되는 미묘한 감정을 전달해 재미를 주며 해당 컨텐츠를 더욱 유행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된 노래 역시 함께 큰 인기를 누리게 되는 것이죠.
그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전 세계 숏폼 유저들의 피드를 점령하며 '강제 힐링'을 선사하고 있는 지아 마가렛(Gia Margaret)의 'Hinoki Wood'와 'Chill Guy(칠 가이)' 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 정말 chill하다..’라는 대사가 꼭 들어가는 밈 영상이 한 때 알고리즘을 점령하다시피 했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2023년 발매된 이 잔잔한 연주곡은 우연히 일러스트레이터 필립 뱅크스의 삽화 속 캐릭터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게 되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아지 캐릭터에 SNS 이용자들이 "여자친구가 화났지만 난 괜찮아, 칠(Chill)한 놈이니까"와 같은 캡션을 달기 시작했고, 이 곡은 그 '근거 없는 여유로움'을 완성하는 배경음악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어딘가 미묘한 캐릭터의 표정, 자세와 더불어 분위기에 딱 맞는 chill한 무드의 음악은 하나의 포맷이 되어 대중들의 3차, 4차 창작으로 이어지며 계속 퍼져나갔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B급 감성의 파급력은 위 그래프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2023년 발매 이후 바닥에서 큰 변동 없이 유지하던 Hinoki Wood의 스트리밍과 원본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는 해당 밈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24년 11월경(노란색 구간)을 기점으로 수직에 가까운 급격한 J-커브(J-curve)를 그립니다. 이는 대중이 Hinoki wood를 단순한 연주곡이 아닌, 밈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청각적 소품'으로 소비하면서 단기간에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유입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내 골반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희귀병에 걸렸다면?’ 이 황당무계한 설정이 최근 숏폼 생태계를 뒤흔든 일명 '골반통신' 밈의 시작입니다. 크리에이터 '퐁귀'가 업로드한 이 상황극은 '골반이 안 멈추는 병'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하며 순식간에 유행으로 번졌습니다. 그리고 2014년 발매된 AOA의 '짧은 치마'가 이 기묘한 증상의 배경음악으로 소환된 것이죠.
이 사례의 가장 큰 특징은 원곡에서 보컬 라인이 제거된 inst(instrumental, 반주) 버전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코러스도, 가사도 없이 오직 의미심장한 비트만이 흐르는 가운데, 텔레파시를 보내듯 골반을 튕기고, 또 상황에 따라 변하는 골반이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 등의 모습은 묘한 우스운 분위기를 유발합니다. 대중들이 말하는 이른바 '킹받는(열받지만 웃긴)' 포인트가 바로 이 비트와 상황의 조화에서 오는 것입니다.
데이터는 이 밈이 단순한 '음악 감상'이 아닌 철저한 '놀이 도구'로 소비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아래의 track data 그래프(2)를 먼저 보면, 밈이 본격화된 25년 10월(노란색 구간)을 기점으로 유튜브 쇼츠 포스트(파란선)와 조회수(빨간선)는 폭발적인 J-커브를 그리며 치솟습니다. 반면, 위의 그래프 (1)의 연두색 선(스포티파이 스트리밍)은 상대적으로 둘에 비해서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입니다. 이는 대중들이 원곡을 찾아 듣기보다는, 자신의 콘텐츠를 표현하는 ****배경음악이자 효과음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강력한 방증입니다.
한편 첫 번째 그래프에서 진한 초록색 선이 보여주듯,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인 멜론의 좋아요 수도 유튜브 관련 지표와 마찬가지로 폭발적인으로 상승한 것을 보면, 10여 년 전 AOA의 짧은 치마를 기억하고 있는 대중들 혹은, 그떈 미처 이 곡을 몰랐던 사람들이 다시금 AOA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함께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세 번째 레슨, 일희일비 않기. 세 번째 사례는 유노윤호의 'Thank U’입니다. 앞선 사례들이 음악이 주는 무드 중심의 소비였다면, 이번에는 강력한 '대사'와 '캐릭터'가 대중을 움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5년 7월, 유튜버 룩삼(LookSam)이 진행한 리액션 컨텐츠에서 유노윤호의 비장한, 그러나 어딘가 조금 웃긴 면이 있는 Thank U의 가사, 안무 컨셉이 재조명되며 밈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노래 중간 중간에 갑자기 나오는 "I hate this", "이건 첫 번째 레슨, 좋은 건 너만 알기"라는 가사는 영상 속 룩삼의 리액션과 맞물려 하나의 유행어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대중들은 "이건 N번째 레슨, OOOO 않기" 의 형식으로 계속해서 저마다의 패러디를 만들어내며 유노윤호 특유의 엉뚱한 진지함을 유쾌한 놀이 문화로 변모시켰습니다. 아울러 해당 문구는 기업, 공공기관의 광고 문구에도 쓰이며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밈의 유행이 실제 아티스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위 fan base 데이터의 변화를 담은 차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를 보면 2025년 상반기까지 멜론 팬(Fans)은 명백하게 감소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밈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7월 초중순(노란색 구간)을 기점으로 하락세가 멈추고 반등이 시작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구간 스포티파이 팔로워의 상승 기울기도 조금 더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한 방'은 유노윤호가 이 밈 바이럴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본업으로 다시금 연결했을 때 터졌습니다. 그래프 후반부의 두 차례 급격한 상승이 일어난 지점은 각각 선공개곡 'Body Language'(10월 9일)와 새 앨범 **'**I-know'(10월 30일) 발매 시점과 조금의 시차를 두고 정확히 연결됩니다. 밈을 통해 유입된 대중의 관심이 단순한 웃음거리로 휘발되지 않고, 신곡 활동과 맞물려 실제 팬덤 유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는 밈 유행이라는 물이 들어왔을 때, 곧바로 안무와 함께 챌린지를 직접 만들어 전파하는 등 아티스트가 열정적으로 ‘노를 저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결국 Thank U 속 ‘첫 번째 레슨’ 밈은 유노윤호에게 있어 단순한 바이럴 그 이상이었습니다. 멈춰있던 팬 지표를 다시 뛰게 만들고, 성공적인 컴백을 위한 가장 확실한 '레슨'이 되어주었으니 말이죠.
최근 K-팝 시장에서 챌린지는 신곡 마케팅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신곡 = 챌린지" 공식이 고착화되면서, 대중이 오히려 인위적인 마케팅성 챌린지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2025년에는 신곡이 아닌, 과거의 음악을 발굴하여 '놀이' 그 자체로 즐기는 챌린지들도 다수 유행했습니다. 특히 곡이 주는 그 분위기 자체를 공유하려는 형태가 두드러진다는 특징이 포착됩니다.
특정 계절이 오면 생각나는 노래가 다들 하나쯤은 있으실 텐데요. 챌린지와 함께 재조명을 받은 대표적인 노래는 바로 엑소(EXO)의 '첫눈'입니다. 2013년 발매된 겨울 스페셜 앨범의 수록곡인 이 노래는, 매년 첫눈이 올 때마다 차트에 재진입하며 '겨울 연금'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 곡의 위상은 단순한 시즌송을 넘어 '겨울에 반드시 챌린지에 참여해야 하는 노래'로 진화했습니다. 발매한지 무려 12년이 넘은 2025년 올 겨울에도 첫 눈이 온 뒤, 이 챌린지가 또다시 유행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첫 눈’의 위상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래프의 파란색 박스로 표시된 구간은 매년 12~2월의 겨울 시즌입니다. 멜론 좋아요 수와 스포티파이 인기도 지수(Spotify Popularity, Chartmetric 자체 제공) 모두 이 구간마다 주기적인 상승 파형을 그리면서 이 곡이 가진 뚜렷한 계절성(Seasonality)을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전체적으로 우상향하는 추세(trend)도 함께 나타내고 있는데, 인기도 지수의 경우, 점수를 누적 형태가 아닌 단기간 내에 계산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최근 해당 곡의 인기가 확실히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2023년 겨울의 수치 변화입니다. 눈에 띄게 이전의 겨울들과 비교해 훨씬 가파르고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23년 11월 말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본격적인 첫눈 챌린지 유행의 영향으로 분석됩니다. 기존의 화려한 아이돌 안무가 아닌, 두꺼운 패딩을 입고 야외에서 귀엽고 간단한 율동을 진행하는 이 챌린지는 귀여우면서도 ‘쿨하고 힙하다’는 반응을 얻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가파른 기울기는 숏폼 챌린지가 단순 청취자(Listener)를 행동하는 참여자(Player)로 전환시켰을 때, 그 트래픽이 얼마나 강력하게 증폭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발매한 지 10년이 지난 노래가 챌린지를 만나 차트 1위까지 올랐던 것은, 이제 음악이 확실히 단순한 감상을 넘어 하나의 계절을 생동감있게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체험이자 컨텐츠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합니다.
챌린지로 다시 조명된 노래 그 두 번째 주인공은 독보적인 콘셉트로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유닛, 오렌지캬라멜의 '상하이 로맨스'입니다. 이번 역주행의 발단은 여자 아이돌 그룹 엔믹스(NMIXX)가 유튜브에 공개한 패러디 영상 '성내동 로맨스'였습니다. 2011년의 원곡을 완벽하게 재현한 이 영상이 조회수 200만 회를 넘기며 화제가 되자, 부석순(BSS), 아이브(IVE), 아일릿(ILLIT) 등 4세대, 5세대 대표 아이돌들이 앞다퉈 이 'B급 감성'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급기야 원곡자인 레이나와 나나까지 등판하여 직접 챌린지에 참여하면서 판은 더욱 커졌죠.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단순하게 '예전에 유명했던 노래를 되살린' 것이 아닌, '웰메이드 B급 감성'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2011년 당시, 오렌지캬라멜의 활동은 파격 그 자체로 평가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류에 가까운 아이돌이 이러한 B급 감성을 노리고 활동하는 것이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세팅된 '멋짐'과 '진지함'만을 강요받았던 K-pop 시장에서, 이들의 '작정하고 만든 유치함'은 오히려 가장 신선하고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과장된 표정, 중독성 넘치는 멜로디, 그리고 누구나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직관적인 포인트 안무는 1분 내외의 승부를 보는 숏폼 생태계에 그야말로 최적화된 소재였던 셈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대중은 "K-pop이 지나치게 다듬어지면서 사라져버린 날것의 재미"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4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소환된 '상하이 로맨스'는, 잘 만든 B급 감성 하나가 시대를 관통하는 명품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유쾌한 사례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사례는 2009년 발매된 Black Eyed Peas의 'Rock That Body'입니다. 제목 그대로 “rock that body"라는 가사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일렉트로닉한 곡은 2025년 6월, 전 세계 숏폼 플랫폼을 강타하며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위 영상처럼 K-pop 아이돌들도 챌린지에 대거 참여하며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죠.
이 곡의 부활은 단순한 '옛날 노래 듣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래의 누적 스트리밍 및 월간 변화량 그래프를 보면, 발매 이후 10년이 넘게 큰 변동이 없이 평이하던 스트리밍 수치가 2025년 6월을 기점으로 수직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오래된 노래의 역주행 패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발매한 지 오래된 노래가 밈, 챌린지 등으로 다시금 재조명을 받는 경우 아래와 거의 유사한 모양의 그래프가 그려집니다. 특히 막대그래프로 그려진 월간 스트리밍 증가량을 보면 역주행의 효과가 얼마나 컸는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은 틱톡이 공식 발표한 track 차트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Rock That Body'는 한국 'Songs of the Summer'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는 한편, 더 나아가 연말 발표된 2025 Year in Music' 글로벌 차트에서도 무려 3위를 차지했습니다. 쟁쟁한 2025년의 신곡들을 제치고 16여 년 전의 팝송이 최상위권에 오른 것입니다. (참고로, 글로벌 차트 2위에 오른 Jess Glynne의 Hold My Hand 역시 Jet2holiday 밈과 함께 엄청난 역주행을 보여주었죠.)
락댓바디 챌린지 열풍은 숏폼 플랫폼이 단순한 바이럴 도구를 넘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음악의 수명을 재정의하는 강력한 미디어로 자리 잡았음을 또 한 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특히 챌린지의 파급력이 어떤 한 국가에 제한되지 않고, 얼마든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음을 증명했죠. 발매 시기와 상관없이 오직 콘텐츠의 매력만으로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숏폼의 파급력이 이제 음악 산업의 판도를 뒤흔드는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숏폼 생태계에서 BGM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닙니다. BGM은 곧 영상 제작자의 정서를 알리는 장치이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대신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BGM은 밈이나 챌린지처럼 특정한 동작이나 유머 코드가 없어도, 오직 음악이 가진 '분위기(Vibe)' 하나만으로 숏폼 생태계를 장악하는 사례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15초 내외의 짧은 영상에 새로운 필터를 씌워주는 BGM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차창 밖 풍경, 사랑하는 연인과 손을 잡고 걷는 뒷모습, 혹은 단순히 멍하니 바라보는 노을 지는 한강.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에서 이런 감성적인 영상들을 보신 적이 있다면, 아마 십중팔구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BGM 첫 번째 사례는 바로 검정치마의 'Everything'입니다. 몽환적인 톤의 기타 사운드 위로 나지막이 읊조리는 가사가 들리는 순간, 평범했던 스마트폰 속 영상은 순식간에 아련한 청춘 영화의 한 장면으로 탈바꿈합니다. 특별한 밈도, 따라 해야 할 춤도 없습니다. 그저 이 노래가 주는 압도적인 '낭만'의 무드가 사용자들의 영상을 꾸며주는 최고의 배경음악이 되어준 것이죠.
실제로 이 곡이 어떻게 '국민 릴스 BGM'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데이터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위의 그래프를 살펴볼까요? 2016년 발매된 이 곡은 꽤 오랜 기간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는 인디 음악의 범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프의 초반부를 보면 완만한 평행선을 그리며 큰 변동이 없었죠. 하지만 2021년 6월(점선)을 기점으로 상황은 급변합니다. 누적 스트리밍 곡선은 가파른 J-커브를 그리며 치솟기 시작하고, 월간 증가량(막대그래프) 역시 이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숏폼 플랫폼에서 '감성', ‘낭만’, ‘청춘’ 등의 키워드와 함께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집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합니다.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오직 숏폼 유저들의 자발적인 'BGM 채택'만으로 5년 전 발매된 노래가 역주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현상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는 검정치마의 다른 명곡들과 비교한 두 번째 그래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프를 보면 'Everything'의 스트리밍 추이는 검정치마의 대표곡이자 '스테디셀러'로 불리는 'Antifreeze'나, 최근 발매된 비교적 최신곡 축에 속하는 다른 트랙들의 성적을 훨씬 상회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신곡이 발매 직후 가장 높은 트래픽을 얻고 서서히 하향 안정화되는 것과 달리, 'Everything'은 발매 후 5년이 지난 시점부터 오히려 신곡보다 더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죠.
이는 현대 음악 시장에서 '숏폼 친화적(Short-form friendly)'이라는 속성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단순히 '듣기 좋은 노래'를 넘어, 나의 콘텐츠를 빛내줄 '쓰기 좋은 노래'가 되었을 때, 음악은 차트 순위를 넘어 대중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이 노래, 대체 제목이 뭔가요?” 2025년 상반기, 틱톡과 릴스 댓글창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질문 중 하나입니다. 화려한 전자음도, 신나는 비트도 없습니다. 그저 몽환적인 기타 아르페지오와 톰 요크(Thom Yorke)의 구슬픈 목소리가 흐를 뿐인데, 전 세계 Z세대는 이 30년 된 락 밴드의 트랙에 열광했습니다. BGM 두 번째 사례는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명반 OK Computer에 수록된 'Let Down'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곡이 팬덤 내에서도 오랫동안 ‘Underrated(저평가된)’ 밈으로 소비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유명한 히트곡인 ‘Creep’이나 ‘No Surprises’에 가려져 있던 이 보석 같은 곡이, 2025년 숏폼 컨텐츠의 BGM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달고 비로소 "One day I am gonna grow wings(언젠가 나는 날개를 펼 거야)"라는 가사처럼 비상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재발견’의 과정은 위의 그래프에 보이는 트랙 데이터에서도 아주 드라마틱하게 나타납니다. 그래프의 노란색 구간인 2025년 상반기를 주목해 주세요. 파란색 선으로 표시된 Shazam(샤잠) 누적 검색 수가 가파르게 치솟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대중이 이 노래를 이미 알고 찾아 들은 것이 아니라, 숏폼 영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을 듣고 "도대체 이 좋은 노래는 뭐지?"라며 적극적으로 음악 검색 앱을 켰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인기 팝송의 경우 이미 곡명을 아는 상태에서 소비되는 반면, 'Let Down'은 검색량이 조금 먼저 선행하여 급증하고, 뒤이어 스트리밍이 따라서 폭증하는 ‘선 발견, 후 감상’의 패턴을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이 1997년에 만들어진 트랙은 2025년 여름, 빌보드 Hot 100 차트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만들어진지 거의 30년이 된 노래가 숏폼이라는 기폭제를 만나 2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주류 차트까지 강제 소환된 셈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날 음악 시장의 역동성을 체감하게 됩니다.
밈이나 챌린지가 곡의 일부를 ‘소비’하는 방식이라면, 라이브와 커버 영상은 곡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바이럴됩니다. 원곡자의 과거 라이브 클립이 발굴되거나, 다른 뮤지션의 커버가 화제가 되면서 원곡 자체가 재조명되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이는 숏폼이 단순히 곡을 틀어주는 것을 넘어, 연주력이나 퍼포먼스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기타 솔로, 고음 파트, 즉흥 애드리브 등 음악적 하이라이트가 15초 내외로 편집되어 퍼지며, 시청자들은 "풀버전이 궁금하다"는 반응과 함께 원곡을 찾아 듣게 됩니다.
Live 영상으로 노래가 재조명된 사례 그 첫 번째는 우즈(WOODZ, 조승연)의 'Drowning'입니다. 이 곡은 독특한 역주행 서사로도 유명합니다. 아티스트가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시기가 아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 있는 소위 '군백기'에 터졌기 때문입니다. 2024년 10월, 유튜브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각 잡힌 군악대 제복을 입고, 뿔테 안경을 쓴 채, 밴드 사운드 위로 처절하게 고음을 쏟아내는 우즈의 라이브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절규하는 듯한 클라이맥스 파트는 '나라 잃은 것 같은 애절함이다'라는 주접 댓글(?)들과 함께 숏폼으로 2차 가공되어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제복 버프'와 '미친 라이브'의 시너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아래 그래프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프 중간의 점선, 즉 군복을 입은 라이브 영상이 공개된 24년 10월을 기점으로 모든 지표가 말 그대로 폭발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짙은 초록색 선으로 표시된 멜론 좋아요 수의 움직임입니다. 스포티파이 스트리밍이 상대적으로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글로벌 청취자의 유입을 보여준다면, 멜론 좋아요는 영상이 화제가 된 10월 4일 직후 수직에 가까운 기울기로 치솟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숏폼을 보고 넘긴 것이 아니라, 국내 대중들이 즉시 음원 사이트로 이동해 곡을 검색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라이트한 팬층으로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숏폼 콘텐츠의 특성상 다소 호흡이 긴 원곡 라이브 영상을 전부 소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례는 하이라이트가 숏폼을 통해 전파되고, 그 강렬함에 매료된 대중이 원곡과 풀 버전 라이브 영상을, 더 나아가 원곡을 찾아보고 또 듣게 만드는 '숏폼 트리거(Trigger) 효과'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결국 우즈의 Drowning은 ‘군대는 커리어무덤’이라는 시장의 오랜 고정관념을 깨고, "실력만 있다면 숏폼은 언제 어디서든 당신을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긴 사례로 남았어요.
"보수는 입사 후에 평행선이고, 도쿄는 사랑해도 아무 것도 없어" 1999년 세기말 도쿄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가사의 몽환적인 락 트랙이 2025년 전 세계 숏폼 유저들의 알고리즘을 다시금 점령했습니다. 시이나 링고(Sheena Ringo)의 불후의 명곡, '마루노우치 새디스틱(Marunouchi Sadistic)'이 Live 영상으로 재조명된 그 두 번째 사례입니다.
무려 곡이 발매된 지 26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이 곡은 촌스러움은커녕 오히려 지금의 트렌드를 앞서가는 듯합니다. 영어와 일본어를 오가는 감각적인 가사, 몽환적이면서도 재지(Jazzy)한 피아노 선율, 그리고 귀에 꽂히는 멜로디 라인은 "이게 정말 90년대 노래라고?" 싶은 세련미를 자랑합니다. 시이나 링고의 압도적인 라이브 퍼포먼스가 대중들의 눈길을 끌고, 시대를 초월한 음악 자체의 완성도가 대중들의 귓가를 붙잡아둔 셈입니다.
앞선 사례들에서 봤듯이, 역주행은 항상 데이터에서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두 번의 결정적인 상승 기류가 포착됩니다. 먼저 2021년 6월을 기점으로 유행의 출발점을 알리는 J-커브가 보입니다. 과거 라이브 영상 편집본이 조금씩 퍼지며 곡이 대중들에게 발견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 6월 이후 (노란색 구간), 그래프는 다시 한번 수직 상승하며 무려 월간 증가량 200만 회를 돌파합니다. 이는 단순히 영상을 보는 것을 넘어, 숏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크리에이터들이 곡의 라이브 영상에 가사와 번역을 추가하는 등 2차 가공하면서 음악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결과입니다. '잘 만든 가사와 멜로디는 결코 늙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21년의 첫 재조명 이후에도 식지 않고 꾸준히 우상향하는 이 그래프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제 숏폼은 리스너들에게 시대를 건너뛴 명곡을 마치 ‘신곡’처럼 발견하게 하는 새로운 창구이자, 아티스트에게는 이미 떠나보낸 곡의 생명을 다시금 되살려내는 기회의 무대가 되어주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지금까지 Meme, Challenge, BGM, 그리고 Live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최근 차트를 뒤흔든 '역주행'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10년 전의 아이돌 댄스곡부터 30년 전의 얼터너티브 락까지,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이들이 다시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무대는 결국 15초의 마법, '숏폼'이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그래프들 속의 데이터가 증명하듯, 이제 음악의 수명(Life-cycle)은 발매일이 아닌 '발견일'을 기준으로 새롭게 쓰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추억 소환이지만, 숏폼을 통해 이 곡을 처음 접한 Z세대에게는 그 어떤 신곡보다 힙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은 사뭇 기계적인 것일지 몰라도, 그 속에서 좋은 콘텐츠를 발굴해내고 반응하는 대중의 '귀'는 여전히 가장 정직하고 뜨겁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혹자는 1분 미만의 짧은 호흡이 음악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아티클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플랫폼의 문법이 변해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음악 그 자체의 본질'이라는 사실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세련된 비트, 공감을 자아내는 가사, 그리고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는 시간이 흘러도, 어떤 새로운 플랫폼을 만나도 반드시 다시 빛을 발하니까요. 다가올 2026년에는 또 어떤 보석 같은 명곡이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우리에게 도착할지, 즐거운 마음으로 그 다음 트랙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