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은 검정치마와 DAY6 중 누구와 더 비슷할까?” - 플레이리스트 데이터로 그려본 K-indie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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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카겔은 검정치마와 DAY6 중 누구와 더 비슷할까?” - 플레이리스트 데이터로 그려본 K-indie 지형도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활용하여 아티스트들의 관계도와 리스너들의 인식을 살펴봅니다.

2025-10-21이찬민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파악하고 제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중음악은 리스너들의 소비를 통해 돈을 버는 산업이고, 아티스트도 상품으로서 본인의 포지션을 확실히 하여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아티스트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과거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평론가들의 글이 실린 NME, Rolling Stone과 같은 매거진, MTV로 대표되는 TV 프로그램 등 몇몇 매체가 산업의 흐름을 정리하고 주도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청취자 수와 연관 아티스트만 확인해 보아도 어떤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인지 바로 알 수 있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관찰하면 팬베이스의 크기가 눈에 보입니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글들을 분석하면 아티스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식되는지 정성적인 이해도 가능합니다.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의 보편화로 인해 다양한 변화가 발생했는데,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플레이리스트’입니다. 기존의 앨범 기반 청취와는 달리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듣는 것이 가능해지며 사람들이 본인 입맛대로 리스트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죠. 현 시점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본인이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고, 전문 큐레이터들이 제작한 플레이리스트를 들어 볼 수도 있고, 아예 알고리즘으로 맞춤형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출처: globalmediainsight
출처: globalmediainsight

이번 아티클에서는 그 중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플레이리스트 영상에 주목합니다. 2010년대 후반 유튜브가 영상 플랫폼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 감성적인 사진과 함께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해 주는, 일명 플레이리스트 영상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적절한 미감과 큐레이션 능력을 갖춘 계정들은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대규모 채널로 성장했고, 원래 스트리밍 서비스를 운영하던 회사가 직접 뛰어들어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만드는 등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는 새로운 음악 디깅 방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플레이리스트 영상들은 리스너들이 새 음악을 접하고 공유하는 현장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짝사랑을 주제로 한 플레이리스트 댓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짝사랑 경험을 공유합니다. 하나의 주제 아래에서 음악과 함께 자연발생한 일종의 커뮤니티인 것입니다. 또한 여러 곡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아티스트들이 같이 분류되어 청취되는지, 어떤 분위기의 글과 함께 등장하는지 등 수많은 정보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주제의 플레이리스트 중 한국 밴드 음악이 들어간 플레이리스트 100개에 대해 영상 제목, 해시태그, 포함된 아티스트 목록을 정리했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아티스트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 시각화를 진행했습니다.

그래프 그려 보기

아티스트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래프를 통한 분석입니다. 본 아티클에서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 정한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아티스트가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리스너들이 보기에 비슷한 무드를 공유하는 아티스트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청춘’ 이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 하나에 검정치마와 혁오가 같이 등장한다면, 그래프에서 두 아티스트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린 그래프의 노드(Node)는 각각의 아티스트가 되고, 엣지(Edge)는 한 플레이리스트에 같이 등장한 관계를 나타내게 됩니다. 한편 두 아티스트가 두 개 이상의 영상에서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시각화 과정에서 단순한 선분으로 잇기보다는 같이 등장한 횟수에 따라 가중치를 지정하여 굵기를 달리해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플레이리스트 하나에 포함된 아티스트 수가 영상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 영상에 포함된 아티스트들을 모두 선으로 연결할 경우, 포함 아티스트 수가 많은 몇 개의 영상이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어 왜곡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플레이리스트에 100명의 아티스트가 들어있다고 하면, 인지도가 매우 낮아 분석의 의미가 없는 아티스트가 포함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티스트는 얼떨결에 99명의 아티스트와 연결되어 그래프상에서 중심에 위치하게 됩니다.

본 아티클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플레이리스트에 들어 있는 아티스트들에 대해 그 크기만큼 페널티를 부여해 전체 그래프에 너무 큰 영향을 끼치지 않게 했습니다. 그 뒤 페널티의 강도를 잘 조절하여 왜곡이 덜한 그래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체 그래프 형태

복잡하게 얽힌 그래프입니다. 그래프 중심부에는 검정치마, 잔나비, 실리카겔, LUCY, DAY6 등 플레이리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정보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우며, 아티스트들이 조금씩 군집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만 확실히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복잡한 그래프를 더 자세히 해석하기 위해 3가지 평가 지표를 도입했습니다.

Degree Centrality: 각 노드들이 다른 노드들과 얼마나 많이 연결되어 있는지 나타냅니다.

  • 이 지표의 상위 5개 아티스트는 잔나비, LUCY, 검정치마, 10CM, 유다빈밴드였습니다.
  • 위 아티스트들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아티스트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Betweenness Centrality: 각 노드들이 ‘중간 통로’ 역할로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지 나타냅니다.

  • 이 지표의 상위 5개 아티스트는 10CM, 잔나비, LUCY, BIG Naughty, 아이유였습니다.
  • 위 아티스트들은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한 아티스트들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Eigenvector Centrality: 각 노드들이 얼마나 영향력있는 노드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나타냅니다.

  • 이 지표의 상위 5개 아티스트는 LUCY, DAY6, 엔플라잉, 검정치마, 유다빈밴드였습니다.
  • 이 지표를 해석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은 LUCY, DAY6, 엔플라잉 3개 팀이 동시에 포함된 플레이리스트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세 아티스트간의 연결고리가 강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전체 플레이리스트 생태계의 중심부에 위치한다고 섣불리 결론짓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알고리즘 상 ‘영향력이 큰’ 노드로 인식되어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핵심 네트워크

다음으로, 엣지들이 난잡하게 연결되어 맨눈으로 분석이 어려운 원래 그래프를 해석이 용이하도록 조정하는 단계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엣지의 가중치 값이 일정 기준 이상인 경우만 남긴 뒤, greedy algorithm을 바탕으로 클러스터링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전체 그래프에서 중요도가 크지 않은 아티스트들을 걸러낼 수 있고, 클러스터가 색으로 구분되어 눈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아래 그래프는 상위 4개 클러스터를 표시했습니다.

빨간색 그룹

  • LUCY, DAY6, 엔플라잉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락 페스티벌에서 헤드/서브헤드를 차지하는 높은 체급의 밴드 실리카겔, 새소년, 쏜애플도 같이 포함된 것이 눈에 띕니다.
  • 일명 ‘밴드 붐’을 이끌고 있는, 주로 2020년대 들어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페스티벌 중심 아티스트 그룹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유다빈밴드, SURL 등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출신 밴드들이 이 그룹에 속합니다.
  • 아티클에는 첨부하지 않았으나, 다른 알고리즘을 사용해 클러스터 수를 늘릴 경우 LUCY, DAY6, 엔플라잉 ↔ 실리카겔, 새소년, 쏜애플이 서로 다른 두 클러스터로 분리되는 흥미로운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파란색 그룹

  • 검정치마, 잔나비, 데이먼스 이어, 카더가든, wave to earth 등 일반적으로 리스너들에게 잔잔한 인디 음악으로 인식되는 아티스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 ‘유튜브 감성 플레이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이 그룹에 포함됩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청춘, 새벽, 사랑 등 감성적인 글귀와 사진이 있는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합니다.
  • 전체적으로 노드간 유기적인 연결보다는, 검정치마와 잔나비 등 중심이 되는 아티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그룹에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연두색 그룹

  • 릴러말즈, Zion.T, Colde 등 알앤비/힙합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클러스터입니다.
  • 수집한 플레이리스트 중 이 그룹을 포함하는 영상이 적기 때문에 노드들이 비교적 덜 조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색 그룹

  • 죠지, 폴킴, 이무진 등이 포함된 일종의 ‘나머지’ 클러스터입니다.
  • 이 클러스터는 자체적인 특징을 가진다기보다, 아티스트 각각의 특성에 따라 다른 그룹에 속한 아티스트들과 혼자 연결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워드클라우드

다음으로는 영상들의 제목과 해시태그를 정리해 각 아티스트들이 주로 어떤 주제의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적은 데이터만으로 직접적인 텍스트 분석은 어렵다고 판단하였고, 워드클라우드를 사용한 시각화로 주제의 경향성을 관찰해보고자 했습니다. 다음은 검정치마, 10CM, 잔나비, DAY6 네 팀의 아티스트를 선정하여 워드클라우드를 그린 모습입니다.

검정치마의 워드클라우드에는 본인의 이름이 가장 크게 등장했고, 이외에도 ‘국내’, ‘여름’, ‘잔나비’ 등의 키워드가 있었습니다. 아티스트 이름이 가장 높은 비중을 가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검정치마의 이름값을 바탕으로 ‘검정치마스러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거나, 플레이리스트에 같이 등장한 여러 아티스트들 중 검정치마를 골라 해시태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또한 검정치마가 새벽감성을 강조하는 플레이리스트에 많이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가설도 ‘새벽감성’ 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0CM 역시 ‘새벽감성’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 키워드는 ‘봄’과 ‘청춘’이었는데, 10CM가 다른 밴드들에 비해 산뜻한 봄과 젊음의 감성이 담긴 음악을 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로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잔나비는 ‘밴드’ 키워드와 함께 본인들의 이름이 높은 비중으로 등장했습니다. 검정치마와 비슷하게 흔히 말하는 ‘인디 감성’을 대표하는 밴드인 잔나비의 높은 인지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검정치마’ 키워드도 크게 등장했는데, 그래프에서도 두 아티스트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워드클라우드에서도 상호 언급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리스너들에게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잔나비 워드클라우드에는 카더가든의 언급량도 검정치마만큼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DAY6의 경우, ‘밴드’라는 키워드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DAY6는 JYP 소속 아티스트이지만 ‘밴드’라는 핵심 정체성을 바탕으로 차별화를 이룬 팀이며, DAY6의 팬덤 역시 이들이 ‘밴드’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밴드음악 플레이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영상을 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자신들의 이름이 두 번째 키워드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높은 인지도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래프 상에서 가깝게 위치했던 다른 아티스트들의 이름도 확인됩니다.

유의점

  • 이 데이터는 오로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생성된 만큼, 일반 청중을 대변하기보다는 인터넷에 활발히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에 관한 데이터입니다.
  • 플레이리스트의 곡 목록을 확인해 보면, 검정치마의 ‘Everything’, 카더가든의 ‘나무’ 등 특정 곡들이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각 아티스트들이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질 때 특정 곡들 위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검정치마 등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자주 포함되는 아티스트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 아티스트들에 관해서는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장기하, 넬, 자우림 등 높은 체급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잘 등장하지 않는 아티스트들은 이 방법으로 분석이 어렵습니다.

마치며

이번 아티클에서는 비교적 적은 양의 데이터이지만 간단한 시각화를 진행하여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리스너들이 직접 만드는 컨텐츠들을 살펴보면 아티스트간의 인식 유사성을 쉽게 확인하고, 씬 안에서 어떤 이미지로 마케팅을 하면 좋을지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타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나 합동 공연 등을 기획할 때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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