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도 공연도 없는데, 매달 수십만 명이 듣는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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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도 공연도 없는데, 매달 수십만 명이 듣는 밴드

Spotify 상위에 오른 AI 밴드 The Velvet Sundown 추적기

2025-07-12정영희

존재하지 않는 밴드가 스포티파이 추천에?

2025년 여름, Spotify의 Discover Weekly 추천에 정체불명의 밴드가 등장했습니다. 레트로한 질감, 꿈같은 사운드, 70년대 사이키델릭을 연상케 하는 미학으로 포장된 이 밴드는, 단 두 개의 앨범만으로 월간 120만 명의 청취자 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검색을 해보면 이들에 대한 공식 웹사이트도, 인터뷰도, 공연 일정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뮤지션도, 팬덤도, 공연도 없는 ‘유령 밴드’가 어떻게 추천 상위에 오르고 스트리밍 수익까지 창출하게 되었을까요? 너무나 수상한 이 밴드, The velvet Sundown은 지금의 음악 산업이 맞닥뜨리고 있는 AI와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Reddit에서 시작된 의혹: AI로 제작한 ‘가짜 밴드’

의혹은 Reddit의 한 게시글로부터 시작됩니다. 2025년 6월 25일, Reddit의 r/truespotify 포럼에서 “곡은 겨우 두 개뿐인데 청취자가 30만 명이 넘는다”며 The Velvet Sundown실존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후 AI 콘텐츠를 비판하는 r/antiai 커뮤니티에서도 이 밴드는 큰 화제가 됩니다. “소개 문구조차 ChatGPT가 쓴 것처럼 느껴진다”며, Spotify가 로열티 지불을 줄이기 위해 직접 AI 밴드를 푸시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했습니다.

“I’m 100% sure this content is pushed by Spotify itself to further minimize the amount of money they pay artists.”

— Reddit 유저

허구뿐인 프로필

이 밴드는 파헤칠수록 수상한 점만 나왔습니다. 실제로 Spotify에 들어가 확인해보면, The Velvet Sundown의 프로필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었습니다.

“they sound like the memory of something you never lived, and somehow make it feel real”

“경험한 적 없는 기억처럼 들리지만, 왠지 진짜처럼 느껴진다.”

Billboard에서 극찬한 문구라고 소개돼 있었지만, 실제로 Billboard를 비롯한 어떠한 매체에서도 이 문장을 사용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밴드 멤버로 소개된 “Milo Rains”, “Orion Del Mar”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활동 이력도 확인 되지 않았고, Rolling stones, Futurism을 비롯한 여러 언론은 이 밴드가 AI로 생성됐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습니다. 사진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앨범 커버 이미지 생성도 AI 특유의 느낌을 풍기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밴드 측은 공식 X계정을 통해 “우리는 AI를 사용한 적이 없다”며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기자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공연을 본 적도 없으며, 알고리즘 바깥에서 우리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해명은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남겼습니다. Instagram에 올라온 사진은 누가 봐도 AI 이미지처럼 보였고, 프로필 소개 또한 생성형 AI가 자주 사용하는 어투 그대로였습니다. 밴드 측은 “우리는 진짜 악기로, 땀 흘리며 곡을 만들었다”며 반박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어떤 라이브 영상, 제작 과정, 인터뷰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논란이 정점을 찍고 있을 때 쯤, The Velvet Sundown은 X 계정을 통해 새로운 입장을 밝혔습니다.

“The Velvet Sundown는 인간의 창의적 디렉션에 따라 운영되는 합성 음악 프로젝트입니다.
작곡, 보컬, 이미지 모두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정체가 AI 기반 프로젝트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변경된 The Velvet Sundown의 Spotify 프로필
변경된 The Velvet Sundown의 Spotify 프로필

더불어 이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속이려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AI 시대의 창작과 진정성, 그리고 저작권과 정체성의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실험적 예술 행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Not quite human. Not quite machine. The Velvet Sundown lives somewhere in between.”
“이건 트릭이 아니라, 거울입니다. 저작권, 정체성, 그리고 AI 시대의 음악의 미래에 대한 예술적 도발입니다.”

출처: The velvet sundown X(@tvs_music)
출처: The velvet sundown X(@tvs_music)

사실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키워준 AI 밴드?

그렇다면, 누구의 정체도 알 수 없는 이 밴드가 어떻게 Spotify 상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Spotify의 전직 데이터 분석가 Glenn McDonald는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즘 Spotify는 음향 특성을 분석해 곡을 추천하는 AI 기반 큐레이션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즉, 사람이든 AI든 알고리즘에 잘 맞게 만들어진 곡이라면 추천 상위에 오를 수 있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부 플레이리스트는 유료 홍보성 큐레이션으로 구성돼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합니다.

Spotify의 “Discovered On” 섹션은 사용자가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해당 아티스트를 발견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상위 30개의 플레이리스트 중 25개가 단 4개의 큐레이터 계정에서 집중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큐레이터 계정: Extra Music, Solitude Collective, KULTPOP!, In-between, Lost Records

예를 들어 Extra Music의 ‘Vietnam War Music’ 플레이리스트는 팔로워 수는 3천 명도 채 되지 않지만, 저장 횟수는 62만 회가 넘습니다. The Rolling Stones, Buffalo Springfield, Jimi Hendrix 같은 1960~70년대 밴드들의 곡이 다수 포함돼 있는데, 그 사이에 The Velvet Sundown의 곡이 무려 26곡이나 들어가있었습니다. 이는 전체 330곡 중 **7.9%**에 해당하는 수치로, 전쟁과 아무 관련 없는 2025년 발매곡들이 이렇게나 많이 포함된 건 꽤 이상한 일입니다.

Solitude Collective의 ‘The OC Soundtrack [All Seasons]’ 플레이리스트 역시 비슷합니다. 이 리스트는 *The O.C.*라는 미국 드라마의 명곡들을 모은 콘셉트인데, Jeff Buckley, Imogen Heap, Oasis 등 실제 등장했던 아티스트의 곡들과 함께 The Velvet Sundown의 곡이 총 22곡이나 삽입돼있었습니다.(현재는 수정되었습니다) 즉, 전체 165곡 중 약 **13.3%**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The O.C.는 2003~2007년에 방영된 드라마이고, The Velvet Sundown의 모든 앨범은 2025년 발매된 곡이라는 점에서 시기조차 맞지 않습니다.  즉, 알고리즘을 위한, 조작된 큐레이션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Spotify뿐만이 아닙니다. The Velvet sundown의 음악은 Apple Music, Amazon Music, YouTube, Deezer 등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 전반에 등록돼 있으며, DistroKid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특히 Deezer는 최근 AI 생성 음악을 감지하고 표시하는 기능을 도입했는데, The Velvet Sundown의 두 앨범에는 모두 다음과 같은 문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Some tracks on this album may have been created using artificial intelligence”

즉, Deezer조차 이 밴드의 음악이 AI에 의해 생성됐을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입니다. 또한 YouTube에서는 DistroKid를 통한 업로드임이 명시되어 있으며, 해당 유통사의 HyperFollow 기능을 통해 다양한 스트리밍 플랫폼 링크가 자동으로 연동돼 있습니다. 이는 특정 제작자가 이 밴드의 콘텐츠를 유통 플랫폼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단 Spotify를 제외한 플랫폼에서는 청취자 수나 실시간 반응 등 공개 지표가 없기 때문에, 실제 청취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알고리즘을 노린 AI 음악 사기

사실 알고리즘을 악용해 AI 음악으로 수익을 노리는 사례는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2024년, 미국 매체 Slate는 컨트리 음악 장르에서 AI 음악과 알고리즘을 악용한 사례를 조명한 바 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Highway Outlaws”, “Waterfront Wranglers” 같은 전형적인 이름의 가짜 컨트리 밴드들이 AI 커버곡만으로 수십만 회의 스트리밍을 기록하고 있었고, 팬 활동이나 SNS 흔적도 전혀 없는 점에서 ‘AI 조작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커뮤니티 유저들이 한 밴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십 개의 유사한 가짜 밴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summer country vibes” 같은 무드형 플레이리스트에 묻혀 있었고, 모두 높은 월간 청취자 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 밴드들을 대표한다고 주장한 인디 레이블 11A는 “인간 아티스트가 참여했음을 증명하는 문서가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없었고, 웹사이트는 만료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이들의 곡은 Slate 보도 직후 플랫폼에서 사라졌지만, Spotify 측은 “우리가 삭제한 것이 아니라 콘텐츠 제공자가 내린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진짜 음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현재 스트리밍 플랫폼은 콘텐츠를 유통해주고 수익을 배분하지만, AI로 생성된 음악을 명확히 구분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습니다. 결국 피해를 입은 아티스트나 레이블이 직접 나서서 삭제 요청을 하지 않으면, AI가 만든 콘텐츠가 “진짜인 척하며” 생태계에 섞이는 걸 막기는 어렵습니다.

The Velvet Sundown 사태는 단순한 ‘AI 밴드’의 해프닝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구조가 스트리밍 플랫폼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진짜 음악’이란 무엇인가?

팬도 없고, 공연도 없는데, 매달 수십만 명이 곡을 듣는 밴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사건은 AI 음악이 실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수익이 플랫폼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된다는 점에서 더 큰 파장을 예고합니다. 마침 최근 유튜브도 7월 15일부터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에 나서며, AI 음악을 둘러싼 수익 구조와 책임 문제가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죠.

👉 다음 편에서는 The Velvet Sundown실제 수익, 그리고 Spotify, YouTube 같은 플랫폼은 이 사태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깊이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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