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으로 연결된 이들, 한국 이모 씬의 어제와 오늘
Interview

감정으로 연결된 이들, 한국 이모 씬의 어제와 오늘

할로우잰, 바닐라유니티, 왑띠, 장지미, 이모김치에게 한국 Emo 씬을 묻다

2026-09-11김준하, 노가은

서브 장르 씬 아카이브 Vol.3 이모 : 바닐라 유니티, 할로우잰, 장지미, 왑띠, 이모김치

감정으로 연결된 이들, 한국 이모 씬의 어제와 오늘

이모(Emo). 1980년대 미국 하드코어 펑크 씬에서 자신의 감정을 보다 가감 없이 표현하려 한 이들에 의해 시작된 이 음악은, 이후 수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며 2000년대 미국의 메인스트림까지 뻗어나가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이모는 하드코어와 헤비니스, 펑크와 인디 록이라는 서로 다른 장면들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 이모의 모습은 이전보다 한층 선명해지고 있다. 기존 인디 씬뿐 아니라 인터넷을 중심으로 등장한 DIY 뮤지션들, 다시 활기를 띤 하드코어 씬, 음악과 문화를 함께 향유하는 커뮤니티까지. 이모라는 이름을 둘러싼 움직임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은 공연장을 공유하고 서로의 음악을 발견하며 이전보다 촘촘하게 연결되고 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된 움직임들이 겹치면서, 오랫동안 희미했던 ‘씬으로서의 이모’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랩 캐즘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모를 부른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오랫동안 한국 스크리모의 중심축을 지켜온 할로우잰의 임환택, 2000년대 이모의 감수성을 가장 널리 들려준 바닐라 유니티의 이승주, 미드웨스트 이모 뮤지션이자 DIY 뮤지션들의 커뮤니티 6v6 Recordings를 운영하는 왑띠, 글로벌 커뮤니티 EMO IS FOR LOVERS의 운영자이자 다양한 공연 및 행사를 통해 이모 씬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온 기획자 이모 김치(김동주) 다. 여기에 에이팝과 바닐라 유니티를 거쳐 활동해온 장지미 가 서면으로 이야기를 더했다. 서로 다른 세대와 장면을 지나온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에서 이모가 이어져온 방식과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씬의 현재를 살펴보았다.


PART 1. 한국 이모의 태동

처음 접했던 한국의 이모 음악은 무엇이었나. 해외의 이모 음악과 비교해 특별하게 느껴진 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임환택 :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한국에서 이모 밴드라고 부를 만한 팀이 거의 없었다. 나중에 이승주의 솔로 앨범, 장지미의 솔로 앨범을 많이 들었었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당시 바세린이 지금처럼 메탈릭한 음악보다는 이모셔널한 하드코어를 시작하고 있었다. 다만 나는 이모를 꼭 좁은 장르로만 보지는 않는다. 감성적인 멜로디로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이라는 넓은 기준에서 보면 김광석의 음악도 이모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승주 : 비슷한 생각이다. 난 고등학생 때 노브레인과 코코어 같은 밴드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후 DeftonesMy Chemical Romance, Thursday처럼 헤비하면서도 감성적인 해외 밴드를 더 많이 들었다. 당시 국내에서 장르적으로 뚜렷한 이모 밴드를 찾아 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런 팀 자체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왑띠 : 2020년 이후부터 한국 인디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파란노을아시안 글로우의 음악을 들으면서 국내에도 이런 DIY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파란노을은 슈게이즈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모의 요소도 상당히 담고 있다. 그전까지는 해외의 미드웨스트 이모를 주로 들었었다.

이모 김치 : 아마 서태지 7집의 ‘Heffy End’ 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어려서 한국과 해외를 비교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즐겼다. 특히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영상에 매료됐고, 한국만의 감성과 국뽕이 느껴져 기억에 남는다.

장지미 :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 잠시 한국에 머물렀을 때 Same Old StoryGreen Head Street을 처음 접했다. 당시 해외 이모 밴드보다 팝펑크에 가까운 사운드로 기억한다.

바닐라 유니티와 할로우잰, 에이팝이 활동을 시작한 2000년대 중반 당시, 이모 음악에 대한 반응은 어땠었나.

임환택 : 아주 소수의 매니악한 팬들이 좋아하는 음악이었다. 메인스트림으로 올라갈 정도는 아니었고, 작은 클럽을 찾아오는 사람은 조금씩 늘었다. 사실 할로우잰이나 바닐라 유니티 모두 신촌에 있었던 롤링스톤즈에서 평일에 공연하던 밴드였다. 관객 2~3명뿐인 날도 있었지만, 두 밴드의 관객 사이에도 교집합이 있었다.

이승주 : 홍대 사운드 홀릭에서 여중생 2명이 관객으로 있었던 수요일 공연이 진짜 재밌었다. 무대 밑에 내려가서 막 소리 지르고. (웃음)

당시 씬에서 교집합이 있거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동료 뮤지션이 있다면?

임환택 : 49 몰핀스는 할로우잰보다 먼저 스크리모를 시작했다. 그 외에 바세린, 토펙스가 기억난다.

장지미 : 가장 인상 깊었던 동료는 지금도 가까이 지내는 바닐라 유니티의 이승주와 로켓 다이어리, 위아더나잇의 정원중이다.

당시 이모 밴드들이 주로 하드코어 펑크, 헤비니스 레이블에 많이 소속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에이팝은 GMC 레코드, 할로우잰은 도프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전반적으로 하드코어나 헤비니스 씬과 접촉할 일이 많았었을 것 같다. 하드코어나 헤비니스 씬에서는 이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나?

임환택 : 당시에는 GMC 레코드, 스컹크, 유니온 웨이처럼 펑크 씬에 여러 무브먼트가 있었다. 각자의 정체성이 뚜렷하다 보니 장르와 그룹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나 견제가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다들 유해지면서, 지금은 다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잘 지내고 있다. 당시에는 이모가 약간 무시당하는 게 없지 않아 있었다. 한국에서만 그랬다기보다, 외국에서는 더 심했을 거다.

당시 이모가 무시당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임환택 : 뿌리가 분명한 하드코어에 비해 “근본이 없다. 가짜다” 라는 시선이 약간은 있었던 것 같다.

왑띠 : 예상해보자면, 이모가 하드코어에서 갈라져 나온 장르이고 2000년대 당시 널리 알려진 이모가 My Chemical Romance처럼 팝펑크와 결합한 메인스트림 음악이었기 때문에, 하드코어 쪽의 반발이 더 강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모 리바이벌을 거치며 장르들이 다시 많이 섞였다.

임환택 : 말한 대로 지금은 다들 융화되어 공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되게 보기 좋다.

이모 김치 : 미국에서도 예전에는 이모 웨이브 자체를 싫어하고 묶이기를 거부하던 밴드들이 요즘은 이모 페스티벌에도 참여하고 그런다. 다 같이 파도에 올라타는 것처럼.

임환택 : 근데 “이모 인정 못해”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있다. 나쁜 건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리스펙이 큰 거니까.

장지미 : 내가 좋아하던 미국의 Victory Records에는 메탈코어, 포스트 하드코어, 이모 아티스트가 함께 있었다. 5th wave emo 씬의 Anxious, Fiddlehead 같은 밴드들도 하드코어에 영향을 많이 받거나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내게 하드코어나 헤비니스 씬과 이모는 뿌리부터 함께 성장하며 계속 영감을 주고받는 장르와 문화에 가깝다.


*5th wave emo : 201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모의 최신 조류

이런 장르 간의 교류는 음악에서도 드러났던 것 같다. 에이팝의 데뷔 EP에는 바세린의 ‘Flowers in the Sand’를 어쿠스틱으로 편곡한 버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을 작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장지미 : 고등학교 시절 일본의 Endzweck과 Envy를 들으며 이모셔널 하드코어를 좋아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바세린의 음악도 찾아 듣게 됐다. 그러다 ‘Flowers in the Sand’에 멜로디를 더해 커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업하게 됐다.

2000년대는 미국에서 이모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던 시기였다. 그런 흐름은 한국에서 활동하던 밴드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임환택 : 해외에서는 씬이 확장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문화적 차이도 있었고 관심 있는 소수만 아는 음악에 가까웠다. 애초에 해외 음악을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바로 찾을 수도 없었다.

이승주 : 악숭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임환택 : 그때는 다음 카페 같은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고, Soulseek이나 Napster에서 음악을 내려받거나 CD를 구워 친구들과 돌려 들었다. 해외 음악 정보 교환 자체가 씬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이승주 : 미국은 락이 주류였고, My Chemical Romance나 Finch 같은 밴드들이 크게 성공했다. 한국은 애초에 락이 주류도 아니었기에, 국내에서 그만큼 크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다. 물론 외국 밴드 보면서 멋있긴 했지만, 어리기도 했고 그냥 관객이 우리 음악 좋아해 주면 그걸로 만족하던 시기였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들은 좀 어려워졌지만.

장지미 : 내게 이모는 2000년대 초중반 MySpace–PureVolume–SmartPunk의 시대였다. American Apparel 후드와 티셔츠, 스키니진을 입고 아이팟이나 CDP로 Underoath, Thursday, Saosin, The Early November를 듣던 시절이다. 그런 씬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오니 Finch와 Story of the Year 사이에 있는 듯한 팝펑크, 뉴메탈 성향의 밴드와 패션이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한국에서도 작은 씬이 조금씩 형성되는 모습이 반가웠다.


*악숭 : 2010년대 초까지 존재하던 국내 최대 규모의 락, 메탈 다음 카페

*Soulseek, Napster : 대표적인 P2P MP3 음원파일 공유 서비스

*MySpace–PureVolume–SmartPunk : 2000년대 미국 이모·팝펑크 씬에서 아티스트의 음악을 발견하고 공유하거나 음반과 굿즈를 구매하는 데 활용되던 소셜미디어·음악 플랫폼·온라인 스토어

2004년 서태지의 7집 <7th Issue>에는 이모코어에 가까운 곡들이 수록되기도 했다. 바닐라 유니티 역시 서태지 공연에 게스트로 서며 더 넓은 관객층을 만났는데, 당시 경험은 어땠나.

이승주 : 서태지에게 초대를 받았을 때는 메인스트림으로 나아갈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욕심도 생겼다. 애초에 바닐라 유니티는 ‘근본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고, 유행하는 요소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할로우잰처럼 오리지널리티가 강한 음악을 좋아했지만, 내가 그런 음악을 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생기면서 음악적으로 타협한 부분도 있었다. 나쁘게 보면 타협이지만, 좋게 보면 음악을 더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새로운 팬이 유입되거나 반응의 차이를 체감했나.

이승주 : 당시 GMC나 할로우잰 같은 팀들의 공연에는 남성 관객이나 ‘이모 키드’들이 많았다. 반면 서태지 팬 중에는 헤비하면서도 감성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도 많았다. 반은 장난이고 반은 진심으로, 그런 여성 팬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기도 했다. (웃음) 실제로 서태지를 통해 우리를 알게 된 팬들이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임환택 : 결국엔 그냥 취향의 문제다.

당시에도 이모를 전면에 내세우는 공연이나 기획이 있었나?

장지미 : 홍대 ‘클럽 스팟’ 에서 세임올드스토리, 버미트랩, 이모티콘, 에어백, 로켓 다이어리, 래빗펀치가 함께하는 팝펑크·이모 기획 공연이 매주 열렸다. 에이팝으로 노브레인의 오프닝을 했던 공연과 바닐라 유니티로 참여한 GMC 연말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이승주 : 이모를 내세우기보다, 보통 레이블이나 친분, 각자의 노선에 따라 공연이 갈렸던 것 같다. 우리는 크래시나 피아, 닥터코어 911, 바세린 같은 팀과 공연을 많이 했었다.

임환택 : 포스트락 밴드들끼리의 공연은 있었다. 할로우잰도 불싸조랑 공연을 몇 번 했고. 스크리모 밴드들은 애초에 많이 없었어서, 49 몰핀스랑 공연한 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할로우잰은 더 스트라이커스, 투데이스팟 등의 하드코어 밴드와 그래픽 디자이너, 포토그래퍼가 함께한 하드코어 펑크 크루 ‘유니온 웨이’를 통해, 음악 활동을 넘어 DIY 방식으로 서브컬처를 만들어가기도 했다.

임환택 : 할로우잰은 처음부터 스크리모 밴드였던 게 아니라 스케이트 록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만든 밴드였다. 유니온 웨이 역시 스케이트보드와 펑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만든 무브먼트였고. 함께 하드코어와 스크리모를 들으며 활동하다 보니 할로우잰도 자연스럽게 스크리모 밴드가 됐다.

한·일 펑크록 페스티벌 ‘유니온 웨이 페스트’는 어떻게 기획되었나.

그때 일본에서 잘하는 밴드들과 메일로 소통하며 섭외하고 했던 것들이 조금 커지면서, 정기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연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았던 ELLEGARDEN을 부르려다 밴드가 갑자기 크게 뜨면서 무산된 해프닝도 있었다.

장지미는 에이팝, 바닐라 유니티, 솔로 앨범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며 이모 음악을 둘러싼 씬의 여러 변화를 계속 봐왔을 것 같다. 활동하던 시기를 돌아봤을 때 씬에서 특별하게 체감한 변화가 있었나.

장지미 : 에이팝, 바닐라 유니티, 솔로 앨범으로 활동한 시기를 돌아보면 특별하게 이모 씬이 형성되기보다 칵스, 국카스텐, 글렌체크 같은 팀의 등장과 함께 개러지와 신스팝이 새로운 트렌드가 됐던 때로 기억한다. 그에 따라 팝펑크와 이모, 하드코어는 점차 쇠퇴기를 맞았고, 개인적으로는 그 흐름이 많이 아쉬웠다.

PART 2. 이모 리바이벌과 커뮤니티의 등장

최근에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DIY 뮤지션들이 인디씬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왑띠는 DIY 뮤지션 레이블 ‘6v6 Recordings’를 운영하고 있는데, 1인 음악가들의 활동 방식은 기존의 씬과 무엇이 다른가.

왑띠 : 다른 점은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일단 코로나 이후 1인 제작자가 크게 늘었었다.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니 집에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파란노을의 앨범이 해외 리스너에게 알려지면서 “나도 혼자 만들 수 있겠다”는 자극을 줬다.

그리고 지금은 DAW와 플러그인이 좋아져 혼자 작곡부터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끝낸 뒤 밴드캠프나 유튜브에 바로 올릴 수 있다. 과거처럼 공연장을 돌며 라이브를 하고 직접 홍보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으로 발견될 수 있다.

2000년대에도 혼자 DAW로 음악을 만들거나 하는 움직임들이 있었나?

임환택 : 컴퓨터 다룰 줄 아는 친구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만들긴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처럼 보편화되어 있진 않았다. 말한 것처럼 SNS를 통해 홍보할 수 있는 시기도 아니었고.

이승주 : 당시에 DAW가 조악하다 보니, 혼자 홈레코딩으로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하기가 어려웠다.

왑띠 : 음악을 혼자 만들다 보니 음악에 폐쇄성이 대단히 짙다. 밴드 구성원끼리 절충해서 만드는 부분이 없다 보니, 제작자의 취향이 훨씬 강하게 구현이 된다. 그러면서 노이지한 사운드와 이모의 장르적인 특색을 매우 밀접하게 갖게 된 것 같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생긴 우울감과 폐쇄성이 이모라는 장르랑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임환택 : 코로나 시기 이후 생긴 흐름에 대해 처음 알았다.

이승주 : 나도 DIY 씬이라는 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음악을 만들다보면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니까, 그런 점은 되게 좋은 것 같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오프라인 공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다. 직접 경험한 사례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왑띠 : 일단 디지털 던 기획을 빼놓을 수 없지만, 그 외에도 ‘포스트락 갤러리 컴필레이션’ 기획을 얘기하고 싶다. 포스트락 갤러리에서 익명 이용자들이 만든 곡을 모아 매년 밴드캠프와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6v6 Recordings에도 그렇게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판을 깔아둘 테니 자유롭게 창작해 보고, 재미있었다면 계속해 보라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오아이세움(OiSEUM!) 이다. 포스트록 갤러리 컴필레이션에 참여한 뒤 ‘그먼씹 하꼬음악 페스티벌’에 솔로 셋으로 출연했고, 이후 앨범을 발매하며 6v6 Recordings에도 합류했다. 온라인 컴필레이션에서 시작해 실제 공연과 앨범 활동으로 이어지고, 군 입대 전 마지막 공연을 베이비돌에서 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기획을 계속하길 잘했다고 느꼈다.


**디지털 던: 2022년 진행된 기획 공연. 파란노을, 아시안 글로우, 왑띠 등 인터넷에서 주목받던 DIY 밴드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먼씹 하꼬음악 페스티벌: 2024년 왑띠에 의해 기획된 무명, 방구석 음악가들의 셀프 프로모션을 위한 페스티벌

이모 김치는 글로벌 커뮤니티 ‘EMO IS FOR LOVERS’를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디스코드, 오픈 채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모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팬 커뮤니티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이모 김치 : 일단 나는 해외에서 자랐고 미국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때 필수 코스로 Brand New, Yellowcard, Fall Out Boy, Taking Back Sunday 같은 밴드들을 들었다. 그때에 관한 기억이 너무 강해서 이후에도 이모 코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대에 이모가 한동안 죽은 장르처럼 취급되면서, 나도 아직 이런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을 괜히 부끄러워했다. 친구가 오면 듣던 Yellowcard를 급히 Post Malone으로 바꾼 적도 있다. (웃음) 이처럼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왑띠 : 나도 이모 절망편을 겪은 적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아이팟을 빌려 가서 몇 분 듣다가 뭐 이런 걸 듣냐며 다시 돌려줬다.

이모 김치 : 맞다. 그런 거 약간 자기 전에 생각나고. (웃음) 하여튼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을 모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좀 전해주고 싶었다.

커뮤니티는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다. 한 사람씩 친구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면서 열 명이 됐다. 규모가 커져 모두가 친할 수는 없게 됐지만 스스로 굴러가는 커뮤니티가 생겼고, 파티와 페스티벌까지 이어졌다. 개인적인 부끄러움에서 시작한 일이라 지금의 역할을 거창하게 정의하기보다 그저 꿈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크다.

왑띠 : 결국은 행동력이 중요하다. 농담으로 하다가 진짜 일을 벌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일을 벌려놔야 뭐라도 만들어진다. 디지털 던도 처음에 농담으로 “1인 음악 하는 애들 모아놓고 공연하면 웃기겠다 크크.” 하다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10명 커뮤니티부터 시작해서 이모 파티를 거쳐 페스티벌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커뮤니티나 이모 파티와 같은 이벤트가 씬에 어떤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느끼게 된 게 있었나?

이모 김치 : 처음에는 거창한 욕심이 전혀 없었다. 이모 파티를 하기 전에는 ‘이모 샌드위치’라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밴드 얘기를 하면서 친해지는 자리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모 파티도 계속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

임환택 : 선구자다, 선구자. 이모 씬의 선구자.

이모 김치 : 아니, 그전에도 있었지 않나.

임환택 : 없었다!

이모 파티를 이모셔널 데미지 페스티벌로 확장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이모 김치 : 이모 파티를 여섯 번 정도 열면서 할 때마다 컨셉을 바꿨었다. 2006년 컨셉, 텀블러 컨셉, 전국 투어 등 해볼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서 새로운 걸 찾다가 해외 밴드를 섭외하자는 얘기가 나와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모 파티의 감성과 발랄한 에너지를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할로우잰과 왑띠도 이모셔널 데미지 페스티벌에 참여했는데, 섭외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임환택 : 나도 언젠가 이모라는 타이틀을 걸고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히 했었지만, 멤버 모두 생업이 있어 누군가 기획하지 않으면 직접 움직이기 어렵다. 그래서 섭외 제안이 더욱 반갑고 감사했다.

왑띠 : 2집을 국내에서는 드문 미드웨스트 이모 앨범으로 만들면서, 이런 음악을 한다는 데 자부심이 생겼다. 마침 헤드라이너가 Chinese Football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전에도 ANORAK!, Your Arms Are My Cocoon, Blind Equation 같은 해외 이모 밴드의 내한 공연에서 오프닝을 맡으며 비슷한 자부심을 느꼈다. 좋아하는 장르의 밴드들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이모 김치 : 사실 왑띠가 가장 먼저 생각나긴 했다. Chinese Football과 하니까 너무 좋아할 것 같아서.

이모셔널 데미지 페스티벌의 라인업 면면이 굉장히 다양했다. 스크리모, 미드웨스트 이모 뮤지션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음발광과 초록불꽃소년단 같은 밴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라인업을 정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이모 김치 :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내가 들었을 때 마음이 움직이는지, 커뮤니티 사람들이 와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지를 봤다. 소음발광이나 초록불꽃소년단에 대해 이모가 맞다, 아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장르의 경계를 특정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에도 나는 친구를 다른 친구한테 소개해주는 성향의 사람이다. 가령 평소에 미드웨스트 이모를 듣지 않던 사람이 페스티벌에서 접하고 좋아하게 된다면 이모를 둘러싼 음악과 커뮤니티도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편이다.

이모셔널 데미지 페스티벌은 Chinese Football의 내한과 함께 진행되어, 해외 씬과 한국 씬이 교류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외 씬과 연결되는 지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이모 김치 : 해외와의 교류 자체가 너무 좋다고 생각한다. 이모가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여러 세대를 거치며 더 이상 미국 음악을 그대로 따라 하는 장르가 아니게 됐다. Chinese Football도 American Football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만의 이야기와 색깔로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이모 씬도 각 국가나 지역별 색깔이 더 뚜렷해질 텐데, 잦은 교류를 통해 영감도 얻고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임환택 : 페스티벌 덕분에 Chinese Football의 보컬과 공연 뒤에 이야기를 나눴다. 해외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도 했고. (웃음) 지금은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은 관계가 생겼다는 것부터 좋았다.

할로우잰도 8월 프랑스 투어를 성공리에 마쳤다. 향후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이나 기대하는 바가 있나?

임환택 : 이번 프랑스 투어가 생각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얻었다. Motocultor Festival에는 우리 음악을 알고 찾아온 관객도 있었고, 처음 본 관객들이 “이번 페스티벌에서 발견한 최고의 밴드였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특히 ‘Dreambound Tides’가 끝난 뒤 한 관객이 멜로디를 흥얼거리자 관객 전체의 떼창으로 번졌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 보는 아시아 밴드의 음악이 언어와 국경을 넘어 닿았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특히 가족 3대가 함께 클럽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인상깊었다. 할아버지부터 헤드폰을 쓴 손주들까지 함께 공연을 보고 크라우드서핑을 즐기는 분위기가 신선했다.

멤버 다섯 명이 생업을 내려놓고 해외 공연을 가는 건 그 며칠의 경험이 평생 남기 때문이다. 할로우잰은 20년 넘게 타협하기보다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해왔고, 어느 장르에 넣어도 조금 어색한 외딴섬 같은 팀이 됐다. 해외 진출이나 경제적 성공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더 많은 곳에서 공연하고 싶다.

지금 이모 씬에서 중요한 공연장이나 공간은 어디인가?

왑띠 : 신촌의 ‘베이비돌’. 이모 계열 해외 밴드의 내한 공연도 예전에는 샤프 같은 곳에서 열렸다면, 요즘은 베이비돌이나 근처 인피니티 클럽에서 많이 열린다. 대관비가 진짜 싸고 음향도 좋다.

이모 김치 : 특정 장소보다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는 공연장이 중요하다. 신인 밴드와 해외 밴드를 두루두루 포용하고 열린 태도로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는 공간이 결국 씬을 키운다.

서울 밖에서도 이모를 즐기는 사람들은 있지만, 씬을 이어갈 공간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모 파티 전국 투어에서 이를 체감한 순간이 있었나.

이모 김치 : 전국 투어를 하게 된 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더 멀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지역에도 이모를 좋아하지만 표출할 방법이 없어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서울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쉬운 건 대전처럼 베뉴 자체가 부족해 이런 움직임을 지속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다는 점이다. 기타리스트가 직접 앰프를 가져와야 공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하기 어려웠을 거다.

임환택 : 예전에 다른 밴드로 전국 투어를 할 때도 비슷했다. 클럽이 아니라 일반 펍에 악기를 가져다 놓고 공연한 적도 있을 만큼 지역에는 공연 공간이 부족했다.

이모 김치 : 베뉴를 운영하는 분들도 이런 파티와 문화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생업이 걸린 일이니 당연히 이해한다. 그래도 지역에서도 조금 더 다양한 시도가 생기면 좋겠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모가 다시 주목받으며 ‘이모 리바이벌’이라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이런 변화를 체감하나.

이모 김치 : 확실히 체감된다. 내 또래 30대에게는 이모가 학창 시절의 추억이자 정체성의 일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반면 더 젊은 층은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예전 음악을 새롭게 발견한다. 알고리즘 덕분에 20년 전 음악도 신곡처럼 소비되는 것 같다. 단순히 레트로라기보다 세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모를 발견하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장지미 : The Dangerous Summer의 전 기타리스트 Bryan Czap이 “왜 이제 와서 American Football을 얘기하는 거야? 그 당시에는 듣기라도 했어?”라는 식으로 말한 게 기억난다. 그 말을 들으며 젊은 세대의 이모 씬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했다.

요즘은 디깅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희귀한 밴드와 앨범을 찾아 듣는 사람도 많아졌다. 다만 그 과정이 음악이나 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보다, 무언가를 발굴하고 수집했다는 개인적인 만족에 그치는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여러 방식으로라도 이모라는 장르가 국내에서 조금씩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점은 반갑게 생각한다.

왑띠 : 이모라는 장르 자체가 가진 특징이 큰 것 같다. 스크리모와 이모바이올런스의 공격적인 사운드, 미드웨스트 이모의 복잡한 리프처럼 어렵게 느껴지는 요소가 있는 반면, 멜로디와 감성은 의외로 팝적인 면도 있다. 이런 양면성이 레트로하면서도 힙한 것을 찾는 요즘 사람들이 이모에 입문하기 좋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PART 3. 이모라는 음악과 문화

이모라는 말을 사람마다 떠오르는 음악이 조금씩 다를 텐데, 각자가 생각하는 이모란 무엇인가.

임환택 : 내가 듣는 이모의 형태는 경험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Dashboard Confessional 같은 음악이 유행을 했었는데, 지금 오래 남는 것은 그런 어쿠스틱 이모다. 요즘에는 Iron & Wine 같은 포크도 많이 듣고, 장르를 떠나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음악에서 같은 감수성을 느낀다.

이승주 : 비슷하게 요즘은 포크나 Jeff Buckley처럼 강한 사운드가 빠진 음악을 많이 듣는데, 장르적인 사운드가 다를지라도 과거에 듣던 이모의 멜로디와 감수성에 분명한 접점이 있다. 말로 표현하면 어렵지만 각자 다 느끼는 이미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왑띠 : 좀 더 장르적으로 말하자면, 내 취향은 포스트 하드코어랑 이모가 섞인 Cap’n Jazz나 Algernon Cadwallader 쪽이다. 근데 이모가 워낙 다른 장르랑 섞이기 쉬운 편이다. 일본의 JYOCHO라는 밴드는 플룻이나 바이올린이 섞여 있는 음악을 하기도 한다. 음악을 들을 때 생기는 고양감이나 직관적인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모적인 감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왑띠 : 그게 곡마다 너무 다르다. Mineral 같은 밴드는 인트로부터 뭔가 의지를 만드는 고양감이 있는데… 이걸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직관적인 느낌이다. (웃음)

이승주 : 말로 표현하기가 진짜 어렵다. 그냥 들었을 때 각자 느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장지미 : 최근에 Good Hangs의 ‘Anthem Emo’ 를 들으면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이모와 그 시절의 모습, 감성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 많이 공감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질문의 답이 되지 않을까?

이모 김치 : 커뮤니티에서 이런 대화를 시작하면 진짜 끝이 없다. 누군가 “이모는 이거다”라고 하면 한참 논쟁을 벌이다가, 3개월 뒤 새로운 멤버가 들어와서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웃음)

‘Anthem Emo’ 가사

그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모는 이거다’라는 주장은 무엇인가.

이모 김치 : 이제 전통파가 있고…

왑띠 : 맞다. 보수주의자가 있다. (웃음)

이모 김치 : 1980년대 후반 워싱턴 D.C.에서 시작된 초기 사운드가 아니면 이모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real emo only consists of 90’s scene…” 라는 유명한 카피파스타도 있다.

왑띠 : 포스트락 갤러리에도 “이것도 이모임?” 같은 글이 자주 올라온다. 이모의 요소를 많이 가져온 음악인데도 이모냐 아니냐를 두고 계속 갈린다. 워낙 다양한 장르와 섞이다 보니 경계 자체가 흐려진 것 같다.

이모 김치 : 나도 어릴 때는 내가 듣는 음악이 더 ‘진짜’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라도 남들과 나를 차별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 결론은 그냥 이모는 이모다. 남들이 정한 기준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듣고 판단했으면 좋겠다.

임환택 : 제발 자기 기준을 남한테 강요만 안 했으면 좋겠다. (웃음)

이승주 : 듣는 입장에서는 “내가 듣는 게 진짜다”라고 말하기 쉽다. 그런데 직접 음악을 만들어보면 그렇게 명확하게 나누는 게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된다.


**”Real emo only consists of ~”: 2010년대 후반부터 유행한 Emo 관련 카피파스타. 초기 이모셔널 하드코어와 90년대 스크리모만이 진짜 이모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스스로를 이모 뮤지션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혹은 장르로 묶이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나.

이승주 : 밴드를 10년 넘게 쉬다가 최근 다시 시작한 건 돈이나 대단한 명반을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 예전에 음악을 하며 느꼈던 즐거움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모라는 카테고리에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으면서도, 또 어느 정도는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르에 구애받기보다 예전에 좋아했던 사운드와 이미지를 부담 없이 다시 보여주고 싶다.

임환택 : 워낙 오랫동안 스크리모 밴드라고 불려서 이제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이름이든 우리를 불러주는 곳이 있고 계속 활동할 수 있다면 좋다.

왑띠 : 이모로 규정되는 것 자체는 좋다. 나도 이모를 좋아하기도 하고. 1집은 가볍게 만든 팝펑크 앨범이었지만, 2집 <우리의 친구 머피처럼> 은 주변에서 열심히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으면서 각 잡고 이모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결국 이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정의 표현인 것 같다.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감정은 활동을 거치며 어떻게 변해왔나.

임환택 : 초창기에는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사를 많이 썼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희망적인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최근 싱글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희망을 가사로 썼다. 사운드 역시 예전보다 톤이 밝아지고 멜로디도 변했다. 다음 앨범이나 싱글은 전체적으로 더 밝아지지 않을까 싶다.

왑띠 : 혼자 작업하다 보니 가사는 여전히 폐쇄적인 편이다. 다만 1집에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2집부터는 구체적인 경험을 알지 못해도 어떤 감정인지는 느낄 수 있도록 썼다. 사람들이 모르지만 사랑 노래도 있다. 사운드는 라이브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최대한 옮기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다이내믹이 무너지거나 노이즈가 많이 끼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걸 좋아한다.

이승주 : 예전에는 이별이나 집착 같은 감정을 가사에 많이 담았다. 요즘은 산책하다 느끼는 것처럼 별것 아닌 감정을 부담 없이 쓴다. 곡도 그에 맞춰 가볍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만드는 편이다.

이모는 음악인 동시에 패션과 정서를 포함한 서브컬처이기도 하다. 한쪽 눈을 가린 헤어, 짙은 아이라인, 피어싱 등 이모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비주얼이나 이미지가 있는데,  한국 이모 씬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나 커뮤니티에 모이는 관객들은 보통 어떤 모습인가?

이모 김치 : 다양하다. 커뮤니티에는 막 이모를 접한 스무 살 무렵의 사람도 있고,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30대 ‘엘더 이모’도 있다. 그냥 락 음악이나 밴드 보러 온 사람들도 있고, 이모 DJ 파티는 좋아하지만 공연은 보지 않는 사람, 공연은 좋아하지만 DJ에는 관심 없는 사람도 함께 섞인다.

패션에 관한 규칙은 과거가 훨씬 엄격했던 것 같다. 한쪽 눈을 가린 머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포저라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유해졌다. 특정 세대의 옷을 똑같이 안 따라 했다고 이모가 아닌건 아니다. 음악, 패션, 디자인, 영화, 커뮤니티까지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는 있지만,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닌가…? 내가 나이들면서 유해진걸 수도 있다. (웃음)

왑띠 : 요즘은 오히려 옛날의 이모 패션보다 지뢰계 스타일로 입은 관객들이 자주 보인다.

이승주 : 그냥 2000년대 초반에는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이랑 이모가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키니진 같은 것들. 지금은 패션 자체가 훨씬 다양해진 영향이 큰 것 같다.

장지미 : 내가 좋아한 당시의 이모 패션은 아메리칸 어패럴 후드에 밴드 티셔츠, 스키니진, 반스 어센틱을 매치하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이었다. 국내 공연장에서는 My Chemical Romance나 AFI를 연상시키는 고스 성향의 이모 패션도 자주 봤다.

PART 4. 씬으로서의 이모

현재 한국에 이모 씬은 존재하는가?

왑띠 : 이모 씬은 확실히 있다. 슈게이즈는 많은 팀이 있어도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모는 신생 밴드들이 함께 공연하며 씬으로서 움직이는 편이다. 페일시스터스, exhibit a, tell me the truth…, 데소나이드 같은 팀들이 베이비돌과 인피니티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펀 라이프 크루 같은 기획팀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도 꾸준히 열리고 있다. 올해 새로 생긴 신촌의 하드코어 펑크 레코드&스케이트 샵인 스핀 앤 그라인드에서도 Tiny Desk 같은 방식의 공연을 하는 등 도움을 많이 주고 있고. 이런 움직임들이 DIY를 중심으로 이어지면서 하드코어와 슈게이즈 씬까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이모가 두 장르의 중간의 연결점이지 않을까.

장지미 : 옛날에는 멜로 펑크나 스케이트 펑크 쪽과 함께 분류되면서 이모까지 포함된 기획공연들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최근에는 슈게이즈나 포스트 하드코어, 스크리모 쪽의 페일시스터즈 같은 팀들이 함께하는 기획공연들이 지금의 이모 씬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임환택 : 나도 최근에 페일시스터스 음악과 활동을 좋게 보고 있어서, 다음에 만나면 꼭 이야기해보고 싶다. 오늘 인터뷰에서 왑띠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렇게 씬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음악 외의 삶도 살아가기 바쁘다 보니 20대처럼 씬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계속 이렇게 활동해주고 무브먼트를 만들어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승주 : 나도 오늘 처음 알게 된 이모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꼭 찾아 들어봐야겠다.

이모 김치 : 씬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모이지 않았을까. (웃음) 이모 파티도 있고, 이모셔널 데미지도 했고, 관객도 많이 왔다. 공연 만드는 분들도 계시고 새로운 이모 팬들도 있다. 이런 움직임들이 모여 나아갈 한국 이모 씬의 미래가 기대된다.


**Tiny Desk :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이 2008년부터 제작해온 라이브 공연 시리즈. 아티스트가 작은 사무실 공간에서 관객과 가까이 공연하는 형식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한국 아티스트가 있다면?

왑띠 : 6v6 Recordings 소속의 오아이세움이 11월에 전역한다. 군대에서도 곡을 많이 썼고,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적이면서 팝스럽고, 일본 인디에서도 많이 들릴 법한 미드웨스트 이모를 만든다. 신진 아티스트 중에는 루(Rue). 슬래커 록이랑 이모를 섞어서 하는데 Weatherday 같은 느낌도 있어서 좋았다.

이모 김치 :에이팝을 굉장히 좋아한다. 에이팝 같은 밴드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또 에이팝처럼 조금 오래된 밴드더라도 계속 그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임환택 : 새로운 밴드보다는 아쉬운 밴드들이 많이 떠오른다. 지금 이런 밴드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팀들. 이모라기보다는 포스트록에 가깝긴 하지만 노 리스펙트 포 뷰티(No respect for beauty) 같은 밴드들이 그렇다. 요즘 밴드들은 내가 감히 말하기가 어렵다.

장지미 : 내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참여했던 Laura Fireball과 최근 프리뷰로 음악을 들었던 Peace Pizza Piece가 기대된다.

슈게이즈 씬의 파란노을처럼, 새롭게 해외에서 하입을 받는 이모 씬의 밴드도 보이나?

왑띠 : 아직 그 정도 규모로는 없는 것 같다. 다들 영감을 받고 새로 생겨나는 시기지, 히트를 친 건 아니기 때문에.

이모 김치 : 왑띠가 제일 유망하지 않나?

왑띠 : …일단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사실 일본에서 공연할 기회가 있긴 했는데 금전적 여건이 좀 빡세더라.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가보고 싶다.

임환택 : 해외 공연은 정말 좋은 경험이 된다. 일본의 유명한 하드코어 밴드들하고 하루 간격으로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는 미친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기억이 평생 간다. 또 일본 씬은 경쟁이 정말 치열해서, 밴드들이 공연 끝나고도 나가는 관객들에게 CD나 티셔츠를 팔며 열심히 홍보한다. 그런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한국의 이모 음악과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하는가.

임환택 : 큰 변화를 바라기보다 지금처럼 꾸준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모 김치 : 모두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씬이면 좋겠다.

이승주 : 다양한 밴드가 설 수 있는 페스티벌이 생겼으면 한다. 관객 동원력만으로 섭외하기보다 비슷한 장르의 팀들이 함께 모여 성공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장지미 : 나도 비슷한 장르의 밴드가 함께하는 기획 공연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해외처럼 당당하게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이모 밴드도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

왑띠 : 창작자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일본처럼 장르 팬덤과 시장이 커지고, 그것을 본 사람이 “나도 이런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자극받는 흐름이 생기길 바란다. 슈게이즈에서 파란노을이 그랬던 것처럼 이모에도 새로운 창작자들의 목표가 되는 성공 사례도 필요하다. 아직 한국에서 그 정도로 성공한 이모 뮤지션이 없으니, 씬이 커지려면 누군가 빵 떠야 하지 않을까.

이승주 : 왑띠가 하자.

왑띠 : 그러고 싶어서 2집을 만들었는데, 쉽지 않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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