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아래를 보던 사람들, 한국 슈게이즈 씬의 어제와 오늘
Interview

신발 아래를 보던 사람들, 한국 슈게이즈 씬의 어제와 오늘

잠, 비둘기우유, 파란노을, 히피토끼에게 한국 슈게이즈 씬을 묻다.

2026-06-08배수현, 노가은

서브 장르 씬 아카이브 Vol.1 슈게이즈 : 잠, 비둘기우유, 파란노을, 히피토끼

신발 아래를 보던 사람들, 한국 슈게이즈 씬의 어제와 오늘

슈게이즈(Shoegaze). 무대 위에서 관객과 눈을 맞추는 대신 신발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타 이펙터를 조작하는 뮤지션들의 모습에서 붙은 이름이다. 1990년대 초 영국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슬로우다이브(Slowdive)’, ‘라이드(Ride)’로 대표되는 이 장르는 두꺼운 기타 레이어와 몽환적인 보컬, 노이즈와 멜로디의 경계를 허무는 사운드로 정의된다.

한국에서 이 음악이 시작된 건 19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에는 '슈게이즈'라는 단어조차 통용되지 않았고, 이 음악을 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금, 한국 슈게이즈는 국내 젊은 세대의 사랑을 넘어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씬으로 성장했다.

랩 캐즘은 씬의 세 세대를 관통하는 네 명의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1990년대 말 드럭에서 활동을 시작한 잠(Zzzaam)의 박성우, 2000년대 중반 슈게이즈 사운드를 본격화한 비둘기우유의 이용준과 한예솔, 2021년 으로 한국 슈게이즈를 세계에 알린 파란노을. 여기에 라이브클럽 히피토끼를 운영하며, 한국 슈게이즈 씬을 조명하기 위해 ‘딜레이 릴레이 페스티벌’을 만든 제임스가 서면으로 함께했다. 무대 위에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무대를 잇는 사람의 목소리를 교차하면, 한국 슈게이즈 30년의 지형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

Part 1. 한국 슈게이즈의 태동과 확장

한 자리에서 만나 뵐 수 있어 영광이다.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박성우 : 잠(Zzzaam) 에서 기타랑 보컬을 하고 있다.

이용준 : 2004년에 합류한 비둘기우유에서 드러머로 활동했었다. 지금은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bbdTRIO) 라는 팀에서 드럼을 치고 있다.

한예솔 : 2015년에 비둘기우유에 기타와 보컬로 합류해 약 1년 정도 활동했었다. 지금은 사막꽃야생마와 자유부인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같이 하고 있다.

파란노을 : 1인 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파란노을이다.

제임스: 홍대 라이브클럽 히피토끼의 대표이자 문화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슈게이즈, 노이즈 계열의 ‘딜레이 릴레이 페스티벌’ 를 주최했다.


옐로우 키친의 [Our Nation Vol.1]이 한국 포스트록, 나아가 슈게이즈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씬에서 그 음악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졌나.

박성우 : “크라잉넛 말달리자 좋다, 옐로우 키친 이 노래 뭐야?” 정도의 반응이 대다수였다. (웃음) 1996년도에 나왔을 당시 펑크 앨범으로 분류됐고, 슈게이즈보단 소닉 유스(Sonic Youth)처럼 노이즈 계열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준 : 맞다. 그때는 크라잉넛이 워낙 잘 나가서, 대부분 ‘말달리자’ 들으려고 앨범을 샀을 거다. 옐로우 키친 곡은 처음 들어보는 사운드였어서 낯설게 느껴졌다.

파란노을 :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웃음) 고등학교 때 처음 들었는데, 살짝 난해하게 느껴졌다.

옛날에는 슈게이즈가 인디 씬에서 주류를 이루던 펑크나 모던록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사운드였을 것 같다. 이를 장르로써 인식하고 좋아하는 반응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성우 : 나조차도 슈게이즈를 크리에이션 레코드(Creation Records)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슬로우다이브, 라이드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처음 알았다. 옛날에는 장르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기도 하고, 슈게이즈는 장르로 인식되기보단 ‘Shoe Gaze(신발을 응시하다)’하는 행위의 의미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이용준: 비둘기우유도 슈게이즈 밴드로 활동을 하긴 했었는데, 1집 이후 여기저기 노출이 됐지만 장르적으로 크게 인식되진 않았다. 그냥 로로스, 프렌지 등 계속 오래 해온 팀들은 똑같고, 그 팀들이랑 하는 공연이 조금 활발해진 정도? 씬은 늘 작았다. 그리고 그때는 리스너들이 장르를 따지지 않고, 대부분 밴드가 좋으니까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제임스 : 한국 슈게이즈가 코로나 이후에 형성되었다는 영문 온라인 인터뷰 기사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옛날에 슈게이즈라는 장르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코로나 전에도 홍대를 포함한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슈게이즈 팀들은 계속해서 활동해 왔다.

파란노을이 슈게이즈를 처음 접하게 된 경로는?

파란노을 : 웹진 웨이브(weiv)에 연재된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로 입문했다. 포스트록이랑 슈게이즈가 교집합이 많은 장르다. 시리즈를 읽는데 아무리 들어도 포스트록 같지 않은 음악들이 있어서 찾아봤더니 슈게이즈였다. 그렇게 슈게이즈를 찾아 듣다가, 유튜브 채널 Asian Shoegaze에서 비둘기우유 1집을 처음 들었다. “한국에도 이런 음악을 하는 팀이 있다니” 라고 생각했다. (웃음)

박성우 :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에 잠이 소개되기도 했고, 직접 인터뷰도 했다. 파란노을이 말한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직접 말했는데, 소희가 옆에서 말렸다. (웃음)

한예솔 : 오히려 그런 곳에 저희 팀이 소개되는 걸 보고 “아, 우리 장르가 그런 거였구나” 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느낌도 있었다. 어쩌면 장르는 아티스트보다 리스너가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용준: 맞다. 아티스트는 그냥 손버릇처럼 해오던 걸 할 뿐인데, 여러 해석을 통해 정체성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럼 각자 활동하시던 시기에는 본인들의 음악을 어떻게 설명했나.

박성우: 어떤 특징으로 설명하기 보다, 잠은 그냥 좋은 음악을 지향한다. 신발을 바라보며 무대하는 태도의 밴드라는 어원적인 의미에 속하는 건 맞지만, 잠은 슈게이즈 밴드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그런 사운드로 들릴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정의하긴 어렵다.

이용준 : 사이키델릭하고 노이즈를 많이 쓰는 음악. 늘 설명하기가 곤란했다.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보컬이 잘 안 들린다’, ‘노래는 언제 나와’ 약간 이런. (웃음)

한예솔 : 사막꽃 EP를 처음 냈을 때 포스트록이라고 많이 불러줬다. 드림팝이나 슈게이즈로 부르기도 하고. 보컬 중심의 음악이 아니라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장르 구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뿐이다. 사실 내 마음 속 지향점은 개러지다. (웃음) 그렇게 통칭되는 장르들을 듣다 보면 내가 하는 음악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제임스 : 인디 씬에서는 특정 장르에 머무르기보다 다양한 요소를 흡수해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파란노을 : 슈게이즈 냄새가 나는 인디 록. 원래도 슈게이즈를 많이 들어서 공식을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그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보컬도 흐물흐물하게 하기보다는 조금 더 앞에서 내지르고, 드럼도 디스토션 좀 넣고. 그냥 내가 원하는 걸 슈게이즈라는 장르로 풀었다.

박성우 : 슈게이즈의 공식이 뭔지 궁금하다.

파란노을 : 객관적인 공식은 아니고 그냥 방구석에서 혼자 생각한 거다. 기타를 스트럼하면 파형의 앞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오는데, 거기에 이펙터를 걸면 그 뾰족한 부분들이 계속 쌓여서 하나의 벽처럼 들린다. 스트럼을 엄청 빨리 하면 그 벽이 더 촘촘하게 쌓이면서 소리가 꽉 차는 느낌이다.

*스트럼(Strum) : 기타 같은 현악기를 연주할 때 손가락이나 피크로 여러 줄을 한 번에 쓸어내리거나 올려치는 주법

*이펙터(Effector) : 악기의 신호를 변조하여, 소리에 다양한 효과를 입히거나 변화를 주는 음향 장비

드럭, 빵, 스팽글, 바다비 같은 라이브 클럽들은 당시 씬을 형성하는 커뮤니티 역할을 했다. 각자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면?

박성우 : 잠의 시작은 드럭이었고, 두 번째가 스팽글이었다. 드럭에서 나오고 스팽글도 없어지고 나서는 이 주요 무대였다.

이용준 : 바다비는 연말에 30팀 불러서 낮부터 새벽까지 공연을 했었다. 꼭 비둘기우유를 자정에 시켜서 매번 무대 위에서 카운트다운하고 그랬다. 그리고 바다비에 '지진병기 666'라는 기획 공연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되게 하드하거나 시끄러운 팀들을 모아서 주기적으로 공연을 했었다. 지금 하면 이슈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웃음)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비둘기우유의 첫 공연을 올린 재머스가 신인 밴드 등용문 같은 클럽이었다. 지금은 빵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한예솔 : 드럭이랑 바다비에서 비둘기우유로 공연해 봤는데, 드럭에서는 정말 모든 장비가 노후화돼서 열악했다. 바다비는 단이 엄청 낮아서 관객들을 정말 가깝게 볼 수 있는 그 분위기 자체를 되게 좋아했다. 정말 모든 장르의 아티스트가 다 공연을 하는 곳이었다.

박성우 : (파란노을에게) 클럽 공연 보러 간 적 있나?

파란노을 : 질문에서 언급된 클럽 중에는 밖에 안 가봤다. 잠이랑 사막꽃도 신도시에서 했던 공연을 본 적 있다. 빅베트는 아직 못 봤다. 죄송합니다..

이용준 : 괜찮다. 안 와도 된다. (웃음)

현재 인디 씬에서 라이브 클럽의 의의는 무엇인가?

제임스 : 공연장은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역할을 넘어, 취향과 감각이 교차하는 만남의 장소다.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커뮤니티에 속하면서 얻은 힘과 받는 위로가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마음을 소통하는 예술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아티스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음악과 활동을 알릴 의무가 있고, 공연장 역시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앞서 이야기한 오랜 역사의 라이브 클럽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런 공간들이 존재하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공연장 문화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나?

이용준 : 홍대 땅값이 많이 올라서 공연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예전에 바다비가 폐업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인디 뮤지션이 직접 나서서 릴레이 버스킹으로 모금 공연을 진행하는 ‘바다비 살리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제임스 : 코로나 이후 공연 시간이 이전보다 빨라졌고, 티켓 가격도 상승했다. 하지만 저가보다 일정한 가치를 제시하는 가격 포지셔닝이 오히려 씬에 여유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인디 공연장에서도 조명이나 비주얼 자킹(VJing) 같은 시각적 요소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됐다. 전반적으로 체험의 밀도를 높이는 공연을 지향하는 흐름이 강화된 것 같다. 다소 높은 가격이더라도 그만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인디 씬으로 인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주얼 자킹(VJing) : 라이브 공연에서 음악에 맞춰 실시간으로 영상을 믹싱하고 조작하는 비주얼 퍼포먼스

한예솔 : 예전에는 공연장에서 대부분 흡연을 하면서 공연을 봤다. 지금은 그러면 큰일 난다. (웃음) 그리고 초상권이 중요해지다보니 공연 포토그래퍼들이 관객의 얼굴을 안 찍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박성우 : 장르가 세분화되면서 관객층도 다양해지다보니까 정규 공연이 줄고, 비슷한 결의 아티스트를 모은 기획 공연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차이점 같다. 예전에는 보통 오디션을 보거나 클럽에 소속된 팀들이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문화였다.

그렇다보니 밴드간의 교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빵에서 항상 정기 공연이 끝나면 사장님이 꼭 단체 사진 찍고, 서로 인사 나누게하고, 뒷풀이도 많이 했다. 저는 내향형이라 진짜 싫었지만. (웃음) 이런 환경 덕분에, 그 당시 밴드들이 서로 응원하고 교류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던 것 같다.

이용준 : 맞다. 바다비에서 공연을 하면 거기서 팬들도 같이 밤새 뒷풀이를 했다. 그래서 그때는 라이브 클럽마다 가족 같이 단단한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나는 직장인이라 도망가고 싶었지만. (웃음)

한예솔: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밤새 다 같이 놀 수도 있지 않을까? 어릴 때는 공연마다 뒷풀이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체력이 부족해서 간단하게 밥 먹거나 다음을 도모하게 되더라. (웃음)

파란노을: 작년부터 신촌에 하드코어 공연을 주로 하는 베이비돌을 많이 갔는데, 공연 끝나면 공연장에서 새벽 내내 논다. 아침 5시에 맥도날드 가고. (웃음)

초기 슈게이즈 팀은 포스트록, 전자음악과 결합된 형태였다면, 비둘기우유 1집 [Aero]를 기점으로 로로스, 프렌지, 불싸조 등 슈게이즈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가져가는 팀들이 눈에 띄었다. 비둘기우유가 정통 슈게이즈로 인식된 사운드적 특징은 무엇인가?

한예솔: 기타가 엄청 크고 레이어도 많이 쌓는다. 미세하게 떨리는 코러스나 드론 노이즈를 많이 쓰다보니, 누가봐도 슈게이즈의 계보를 잇는 정석적인 사운드로 느꼈을 것 같다.

비둘기우유는 해외 투어를 비롯해 미국의 블리스 시티 이스트와의 스플릿 앨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헌정 앨범 〈Loveless Tribute〉 참여 등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해외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런 작업들은 어떤 계기로 성사됐나?

이용준 : 대부분 먼저 해외 아티스트 측에서 연락을 줘서 성사됐다. 마블발 앨범은 비둘기우유 일본 공연에서 일본의 공연 기획자분이 저희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고 싶어 하셨고 이게 그 중 하나였다.

팀당 한 곡씩 지정해 줬는데, 처음에는 엄청 미니멀하게 편곡했다가 레이블에서 이거 안 된다고 혼났다. 그래서 멤버들끼리 그냥 마음대로 락킹하게 막 해서 냈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웃음) 원정이랑 홈 공연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아쉽게 무산되고 앨범만 남았다. 근데 지금 이게 아직 있나? 어딘가 몇 개 있을 거다.

파란노을 : 혹시 그때 [Yellow Loveless]도 알고 있었나.

일본에서 Yellow가 나오고, 한국에서 Blue가 나왔다.

이용준: 맞다. 일본 분들이 한정판 발매 이런거 되게 좋아한다. 그때 비둘기우유 앨범 라이센스가 결국 됐는데, 일본판에만 히든 트랙 하나 넣고 그랬던 것 같다.

파란노을: 나는 [Blue Loveless]가 더 좋다. (웃음)

당시 해외 투어의 반응은 어땠나.

이용준 : 주변에서 다들 신기해하고 엄청 부러워했다. 중국 투어를 처음 돌았었는데, 9일 동안 8번 공연을 하고 매일 이동을 했다.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관객이 적어서 미안하다고 해도 막 200~300명씩 오니까 되게 좋았다. 그때 한국에서 비둘기우유가 쇼케이스 정도 해야 100명 좀 넘게 오고 그랬으니까.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이용준 : 비둘기우유가 떼창이나 환호를 지를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니까, 한국에서 공연을 하면 관객들도 되게 조용히 듣는 편이다. 근데 베이징에서 ‘Elephant’라는 곡을 하는데, 저희 리더 형이 신나서 마이크에 대고 "Dance!" 그랬더니 관객들이 신나게 춤을 추더라. (웃음)

당시에 해외 레이블·리스너와 연결되는 경로나 기회는 주로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용준: 그런 체계가 아예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때 비둘기우유가 ‘서울소닉’ 이라는 해외 진출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갤럭시 익스프레스, 이디오테잎과 한국 대표로 선발됐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북미 투어를 돌았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당시 해외 공연은 대부분 경비 정도만 지원해 주고 별도로 공연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도 4집 <빛나>로 20년 만에 복귀했다. 초창기 활동 당시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한국 슈게이즈 씬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박성우 : 슈게이즈 씬 인터뷰처럼 이런 자리가 생긴 게 달라진 점 아닐까? (웃음) 비둘기우유나 로로스 등 예전에 내가 알던 밴드들은 이제 활동을 안 하지만, 파란노을을 비롯한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씬의 흐름을 새롭게 이어가고 있다. 그게 가장 큰 변화로 느껴진다.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리스너들도 훨씬 다양해졌다.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지표를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연령대나 국가의 사람들에게까지 잠의 음악이 전해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러면서 아티스트들 사이의 새로운 교집합도 생기는 것 같다. 파란노을을 통해 잠을 알게 되고, 비둘기우유를 통해 사막꽃을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처럼.

Part 2. 인터넷 기반의 DIY 슈게이즈 열풍

파란노을의 2집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국내외에서 큰 반응을 얻으며, DIY 슈게이즈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반응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파란노을 : 이걸 내고 나서 조금 기분이 안 좋아졌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한테 조금 과분하다고 느꼈다. “이게 왜 떴냐”는 반응이 거의 70%였어서, 당시에 인터넷을 그만뒀었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피치포크 리뷰 쓰시는 분이 메일로 “앨범 리뷰를 쓸 건데 혹시 말해 줄 수 있는 게 있냐”고 보내주셨다.

늘 한국 인디를 동경해 왔는데, 리스너에서 창작자로 가는 기분이 그 때 처음 들었던 것 같다. 해외에서도 활동하는 비둘기우유, 아폴로18, 잠비나이처럼, 나도 해외에서 조금 알아주나 싶어서 기분이 좋긴했다.

리스너가 아닌 씬에서 이 앨범을 어떻게 들었는지 궁금하다.

제임스 : 코로나 한가운데의 암울함을 응축하듯 동시대의 불안감을 대변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일기장을 써 내려가듯 베드룸 프로듀싱(Bedroom Producing)만의 매력이 잘 드러난다.

한예솔 : 요새 파란노을이라는 팀이 엄청 인기라는 말이 되게 많았다. 러프한 질감의 홈레코딩 앨범인데 인기가 많다고. 그래서 슈게이즈 붐은 오나? 싶었다. (웃음)

이용준 : 음악이 멋진건 이미 증명되었지만, 씬에 이정도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젊은 뮤지션이 있는 게 대단하다. 슬로다이브 내한 공연에서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을 때 관객석에 있었는데, 팬들이 정말 많더라. 파란노을이 저 큰 무대에 올라가있다니 하면서 팬들이 엄청 뿌듯해하는 게 느껴졌다.

*베드룸 프로듀싱(Bedroom Producing) : 개인 공간에서 음악 제작 전 과정을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작업 방식

파란노을이 한국 슈게이즈 씬의 분기점이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란노을 : 나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전 세계적으로 슈게이즈가 뜬 것 같다. 예전에 틱톡에서부터 ‘Deftones’, ‘Hum’ 느낌의 그런지를 슈게이즈와 결합한 ‘그런지게이즈’가 유행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Julie’, ‘Wisp’ 같은 음악이 틱톡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됐고,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뮤지션들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 흐름이 해외에서 먼저 시작돼 국내로 역수입된 것 아닐까.

한예솔 : 물론 전세계적인 슈게이즈 리바이벌도 맞지만, 한국에서 서브 장르가 이 정도로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파란노을 2집 이후에는 씬에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박성우 : 잠이 20년 만에 다시 활동하게 된 이유가 요즘 파란노을로 인한 한국 슈게이즈의 붐 때문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물론 파란노을 때문은 아니다. (웃음)

제임스: 파란노을의 2집이 남긴 반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후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1인 슈게이즈 뮤지션이 늘어난 데에도 파란노을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예솔 : 예전에는 슈게이즈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해도 다들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아시안 글로우나 파란노을 이후에는 "나도 음악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라는 마음을 훨씬 쉽게 갖게 된 것 같다. 창작자를 씬으로 유입시킨다는 점에서 분기점이지 않을까.

이용준 : 파란노을이 거의 슈게이즈 BTS 아닌가? (웃음)

파란노을 : 이거를 적으면 저는..

박성우 : 이거 진짜 큰일날.. 저 아미예요!

파란노을이 한국 슈게이즈 장르의 대표로 언급될 때마다 매우 겸손해진다.

파란노을 : 내가 한국 슈게이즈를 대표한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가상 악기를 사용해서 이질적인 사운드를 많이 내다보니 정통성도 없고..

ALL : (웅성웅성) 정통성은 우리도 없다. (웃음)


현재 홈 레코딩 기반의 1인 뮤지션들이 늘어나고 있다. 슈게이즈와 DIY 작업 방식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제임스 : 슈게이즈의 내성적인 매력은 혼자서 감상하기에도, 혼자 작업하기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밴드는 여러 뮤지션 간의 조화와 합을 지속적으로 맞춰야 하는 구조인데, 비교적 내성적인 성향의 아티스트일수록 DIY의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슈게이즈는 노이즈와 디스토션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장르이자 로파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변형되거나 비정형적인 음원 소스를 활용하기에도 적합하다. 컴퓨터 하나로 작곡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베드룸 프로듀싱 환경과 잘 맞는 장르인 것 같다.

파란노을: 국내 힙합이 떴던 이유도 접근성이라고 생각한다. 비트 위에 랩만 얹어도 누구나 래퍼가 될 수 있으니까 쉽게 도전할 수 있지 않나. 슈게이즈도 1인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증명이 되면, 유입되는 창작자가 더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성우: 잠도 홈레코딩 기반이었는데, 과거나 지금이나 작업 방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예전보다 장비가 발전하면서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을 뿐이다. 그래서 다작이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다. 음악의 느낌이 비슷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좋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도 많아진다. 이게 장점이자 단점 아닐까.

*로파이(Lo-Fi) : 의도적으로 음질을 낮춰 노이즈나 테이프 잡음을 살린 사운드

*디스토션(Distortion) : 소리를 왜곡해 강한 노이즈와 두꺼운 음색을 만드는 이펙트

이제는 누군가 만든 독특한 사운드도 플러그인이나 프리셋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높은 정보 접근성이 오히려 사운드를 획일화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느끼나?

파란노을 : DIY의 단점이 비법 소스가 공유되면 누구나 양산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드럼 플러그인을 매개로 했는데 1년 후에 모두가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근데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슈게이즈 창작자가 늘어난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고, 다른 사람들이 내 소리를 똑같이 해도 내가 다음에 다른 시도를 하면 되지 않을까?

박성우: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등의 슈게이즈 장르를 형성한 몇몇 밴드들이 있지 않나. 최근에 많이 느낀 게, 전부 그 기타 톤을 따라한다. 그 안에서도 물론 차별점들이 있겠지만, 징징대면 다 슈게이즈인줄 안다. 클릭 한 번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건 장르가 주목받으며 생기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다. 100명이 하던 100만 명이 하던, 따라 해서 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된다. 분명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파란노을: 징징대는 소리가 너무 많은 이유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처음부터 너무 잘해버려서 사람들이 시도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누가 더 성경을 잘 외우나 이렇게 되지 않았나. (웃음) 그래도 다른 발전 방향성이 있다고 믿는다. 케빈 실즈(Kevin Shields)처럼 음향을 중심으로 일렉트로닉을 섞거나, 마케팅을 다르게 할 수도 있고.

*플러그인(Plugin) : 음악 제작 시 악기 소리나 음향 효과를 추가하는 소프트웨어.

*프리셋(Preset) : 특정 사운드를 쉽게 재현할 수 있도록 미리 저장된 음향 설정값.


현재의 슈게이즈 유행이 코로나와 개인화 시대를 거쳐온 젊은 세대의 불안이나 우울과 연결되어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제임스 : 코로나 시기에는 이동과 접촉이 제한되면서 불안의 감각이 사회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었고, 슈게이즈가 지닌 감정적인 오버톤 역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또한 일상이 제한되면서 코로나 이전의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음악 속에 반영되기도 했고, 리스너들 역시 이러한 정서를 담은 슈게이즈 음악을 더 찾게 된 것 같다. 특히 슈게이즈는 내면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투영하기에 적합한 장르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

박성우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는 언제나 불안하고 우울하다. 다만 코로나 전후로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줄었고, 그러다 보니 개인화가 조금 더 진행된 측면은 있는 것 같다.

이용준 : 그니까, 불안하고 우울해서 클래식을 들을 수도 있지 않나. (웃음)

파란노을 : 어느 정도 공감한다. 예전에도 홍대 우울 감성이라는 게 있었다. 푸른새벽이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같은 분들도 당시에는 젊은 세대였을 거고. 불안이나 우울은 항상 존재하는데, 코로나 시기의 격리를 거치면서 조금 다른 형태로 바뀐 게 있지 않을까 싶다.

근데 내 생각에는 힙스터들 사이에서 일종의 암묵적인 바이럴이 된 것 같기도 하다. SNS에서도 '우울하면 슈게이즈를 들어라' 같은 콘텐츠가 자주 보인다. 원래는 클래식을 듣거나 재즈를 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우울이나 불안을 다루는 음악으로 인식된 것 같기도 하다.

Part 3. 슈게이즈의 사운드를 찾아서

세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각자의 음악에서 선명함을 포기하고 소음이나 꽉 차는 사운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예솔 : 그런 사운드가 가장 나답다고 느낀다. 슈게이즈는 훨씬 더 내면적이고 안으로 파고드는 장르적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사람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보단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타입이다. 혼자만의 이야기를 기타 멜로디, 가사, 보컬 톤처럼 직관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사운드의 질감이나 분위기로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나랑 잘 맞는다.

슈게이즈는 내향형 음악인 것 같다. (웃음)

제임스 : 실제로 인디 뮤지션들 사이에는 INFP 성향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웃음) 내향적인 감각을 지닌 아티스트일수록 슈게이즈 특유의 내성적인 정서에 더 깊이 공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박성우 : 난 선명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노이즈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사운드도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게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과 잘 어울릴 수만 있다면 그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던 소음이든 상관없다.

이용준 : 드러머 입장에서 표현이 자유로워서 좋았다. 그 당시에 느낀 거로는 슈게이징 리듬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었고, 반복하거나 사운드를 쌓아가는 방식에도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멤버들이랑 몰입하는 시점이 비슷할 때 오는 희열감도 컸다.

파란노을 : 처음에는 노이즈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기계 티를 안 내려는 얍삽한 수법으로 썼다. (웃음) 2집을 처음 냈을 때 기타를 안 쓰고 가상 악기를 썼더니 기계 티가 너무 나서, 일부러 박자를 엄청 쪼개고 이펙터를 넣었다. 그 이후에는 노이즈의 매력에 서서히 빠졌다.

노이즈의 어떤 매력에 빠졌나.

파란노을 : 이어폰으로 볼륨을 9로 했을 때 귀에서 물리적으로 타격을 입는데, 오히려 그게 어머니 안에 있는 푸근한 느낌이 든다. 아기도 메탈 소리를 들으면 울음을 멈춘다던데, 비슷한 것 아닐까?

각자 음악에서 중요하게 가져가려고 하는 슈게이즈적 요소나 노이즈, 사운드의 질감 같은 게 따로 있나.

박성우 : 잠에서 특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하나하나의 음이 쌓이는 거다.

레이어를 쌓는 게, 몽환적인 사운드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꽉 차는 사운드를 위해서인가?

박성우 : 둘 다일 수도 있고, 반대로는 새로운 음을 만드는 거다. 음이 하나가 있으면 여기에 화음이나 하모니가 있을 거고, 또 쌓으면 또 다른 화음이 생기고. 이게 불협이 돼서도 잘 어울리는 그 순간이 있다. 내가 희미하고 미세한 소리까지도 듣는 편이라, 하나 하나의 음을 쌓아서 선명하게 들려주고 싶다.

파란노을: 기타 리버브 먹이고 소리를 ‘흐어~ ‘ 하면 완성되는 양산형 슈게이즈가 있다. 노력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노력이 없어 보이는 사운드만 내지 않으려고 한다. 뭐, 사실 다 좋은게 좋은거다. (웃음)

한예솔 : 라이브 할 때 보컬이 묻혀도 괜찮으니까 기타 사운드를 크게 가져가려고 한다. 아까 파란노을이 말한 볼륨을 9 이상으로 키웠을 때 오는 터치감이 라이브 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성우 : 잠깐 다른 질문인데, 공연장에서 이어플러그는 왜 끼는 거냐.

파란노을 : 귀가 아파서 낀다. 스피커 앞에서 공연 보면 3일 정도 귀가 안 들린다. 소음발광, 다브다 공연보고 한 달 동안 이명에 걸린 적도 있다. (웃음)

박성우 : 그냥 손으로 살짝 귀를 막았다 열었다 하면 안 되나?

이용준 : 그거 당해봤는데 되게 기분 안 좋았다. 비매너다. (웃음)

파란노을 : 이거는 너의 음악을 듣기 싫다고 표현하는 느낌이다.

박성우 : “아, 귀를 막았다 열었다~” 반복하면 환각의 효과가 있어서 좋다.

파란노을 : 귀를 그렇게 하는 대신 눈을 마구 깜빡여라. 클럽 느낌이 난다. (웃음)

박성우 : (눈을 깜빡이며) 오, 진짜 좋다. 노이즈가 막 심한 팀 볼 때 이렇게 하면!

이용준 : 동시에 하면 볼만하겠다. (웃음)

새로운 관람 방법을 많이 배워간다. 다음에 슈게이즈나 노이즈 공연 볼 때 꼭 해보겠다. (웃음)


원하는 사운드를 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성우: 옛날에는 장비를 잘 아는 친구한테 악기 수급도 받고 정보 교류도 했다면, 지금은 AI가 다 도와준다. (웃음) 요즘은 플러그인이 너무 많다 보니, 오히려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잠은 되도록 기타는 앰프 소리를 그대로 받아 녹음하고, 플러그인도 되도록 안 쓰려고 하고 있다.

한예솔: 음악 디깅을 가장 많이 했다. 라이드, 슬로우다이브 등 슈게이즈나 포스트록 밴드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들어보면서 내가 원하는 질감을 연구했던 것 같다. 비슷하게 이펙터 세팅을 바꿔보기도 하고, 멤버들한테 조언을 구하기도 하면서.

이용준: 너 되게 열심히 했었구나. (웃음) 난 반대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같이 유사한 장르의 음악을 듣기보다, 아예 특이한 음악이나 리듬을 주로 듣고 적용하려고 했다.

파란노을: 가상 악기를 쓰고, 앰프도 시뮬레이션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안에 있는 앰프를 쓰다 보니까 소리가 되게 한정되어 있었다. 최근에 프리셋으로 경우의 수를 몇 번 시도하니까 원하는 소리가 나오더라. 요즘에 유튜브에 ‘How to make shoegaze’만 검색해도 다 나오지만, 일부러 더 안 찾아보려고 한다.

소위 ‘주머게이즈(Zoomergaze)' 라는 인터넷 기반 슈게이즈가 뜨는데, 그런 것에 심술이 나기도 하고, 나도 튜토리얼을 보고 영향을 받게 되면 천편일륜적인 슈게이즈를 하게 될 것만 같다. 사실 이미 나도 주머게이즈의 영역에 속해 있어서 더욱 그 흐름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주머게이즈(Zoomergaze) : Z세대 리스너를 중심으로 확산된 현대 슈게이즈 흐름. 디지코어와 숏품, 스트리밍 등의 인터넷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현대 청년층의 불안과 소외감을 주요 정서로 다룬다.


해외 리스너들이 정의하는 한국 슈게이즈만의 특징이 있다면?

제임스 :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부 슈게이즈는 한국 특유의 사이키델릭한 감각이 스며들어 있다고 본다.

파란노을: 일본 슈게이즈하면 청량하거나 서정적인 보컬 멜로디가 특징으로 떠오르는데, 한국은 그에 비해 슈게이즈가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 하나의 특징으로 정의한 반응을 딱히 못 본 것 같다.

한국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신해경이나 브로큰티스 음악을 들으면 슈게이즈인데도 어딘가 발라드 같은 정서가 느껴질 때가 있다. 근데 슈게이즈보다 언니네이발관이나 델리스파이스 같은 2000년대 초 모던록에서 한국적인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럼 대부분의 해외 리스너는 한국 슈게이즈를 아시아로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큰지?

파란노을 : 일본 슈게이즈 씬이 워낙 크다 보니까, 일본과 아시아 VS 영국과 미국 정도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한국도 조금 올라오긴 했다.

Part 4. 한국 슈게이즈 씬은 존재할까?

인디 레이블들은 비슷한 결의 뮤지션들을 연결하는 씬의 거점이기도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레이블이 있다면 무엇이며, 씬에서 어떤 역할을 했었나.

박성우: 앤 바이런, 벌룬앤니들, 강아지문화예술, ZZZ, 파스텔뮤직 등이 기억난다. 거창한 회사라기보다는 친구나 지인들이 모여 앨범을 내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보니 유통이나 발매 같은 실질적인 역할까지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용준: 당시 비둘기우유는 일렉트릭뮤즈 소속이었다. 그때 레이블은 녹음을 도와주고, 유통을 해주고, 쇼케이스를 진행해 주는 정도였다. 그래도 비둘기우유를 외부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덕분에 EBS 공감 6월 헬로루키, 펜타포트 같은 무대에도 설 수 있었다.

현재 많은 슈게이즈 아티스트들이 파란노을이 소속된 ‘Longinus Recordings’와 왑띠가 설립한 ‘6v6 Recordings’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파란노을: 우리도 옛날 인디 레이블이랑 일맥상통한다. 둘 다 레이블이라기보단 같이 음악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크루에 가깝다. 롱기누스 레코딩스(Longinus Recordings) 는 1인 레이블이라 밴드캠프로 CD를 발매해 주는 정도다. 근데 혼자 하다 보니까 사람들한테 CD 언제 오냐고 디엠이 엄청 온다. (웃음)

지금 한국 슈게이즈 씬에서 주목하고 있는 아티스트나 움직임이 있다면?

한예솔: 히피토끼 대표 제임스. 현재 한국 포스트록, 슈게이즈 씬 메이커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포스트록 컴필레이션부터 슈게이즈 페스티벌까지, 씬을 부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한다. 아티스트로 주목하고 있는 팀은 유령서점, 하이크(HIIK).

제임스 : 나비춤은 슈게이즈와 인터넷 프린지 문화에서 비롯된 베이퍼웨이브(Vaporwave)를 결합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고, **스키틀즈(Skittles)**는 슈게이즈를 기반으로 펑크, 이모, 그런지, 사이키델리아를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특히 ‘청춘박살’ 같은 곡에서는 청춘의 불만과 동시대의 불안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파란노을 : **머더머더(MurderMartyr)**가 슈게이즈에 일렉트로닉을 마구 섞은 1집 이 매우 신선했다. 앞으로도 크게 발전할 것 같다.

*베이퍼웨이브(Vaporwave) : 1980~90년대 대중문화를 재가공해 향수와 디지털 감성을 표현하는 인터넷 기반의 음악·시각 예술 장르


한국에서 슈게이즈는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했고, 장르의 경계 역시 모호한 편이다. 현재 한국의 슈게이즈 씬은 존재할까?

파란노을 : 씬이라고 하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주제 의식이나 특징적인 사운드 같은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내가 하고 싶어서 노이즈를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리스너들이 슈게이즈라고 부르는 느낌이다. 다만 외부인이 보기에는 인터넷 아티스트들의 총집합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한 10년 정도 지나고 나면 국내 슈게이즈 씬의 최전선에 있던 뮤지션들로 기억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제임스 : 씬이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것 같다. 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밀도나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씬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겠지만, 슈게이저들은 씬의 인지도와 별개로, 나만의 아지트를 드나들듯 자연스럽게 씬 안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다.

이용준 : 씬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만드는 것 아닐까. 비둘기우유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슈게이즈가 뭔지 잘 몰랐다. 근데 리더 형이 항상 속옷밴드나 잠 같은 팀들을 묶어서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누가 물어보면 잠이나 속옷밴드 같은 팀들이 있고, 비둘기우유는 한 1.5~2세대 정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박성우 : 1세대 이런 거 하지 마라. 진짜 싫다. 그리고 속옷밴드랑 비교하지 마라. 속옷밴드 진짜 싫다. (웃음)

한예솔 : 왜 그러냐, 난 속옷밴드 좋은데. (웃음)

박성우 : 장난이고, 속옷밴드랑 정말 친했다. 속옷밴드랑 같이 공연도 많이 하고, 술자리도 하고, 음악적 조언도 자주 주고받았다. 그런 게 씬이라면 씬이라고 본다.

파란노을 : 개인적인 친분이랑 음악적인 씬의 정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박성우 : 맞다. 나도 그래서 속옷이랑 같이 취급하는 걸 싫어한다. 어떻게 뒤돌아서 공연을 해. (웃음)

이용준 : 그걸 보는 것도 재밌는 것 같다. 예전에 속옷밴드가 정말 오랜만에 재결성 공연을 한 적이 있어서 갔는데, 온갖 뮤지션들이 다 와 있었다. 그걸 보면서 오히려 지금 와서야 "아, 그때 하나의 씬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둘기우유가 재결성 공연을 한다면, 어떤 팀들이 올 것 같나.

이용준 : 우리는 주로 빵에서 공연을 했다 보니, 그런 결의 음악을 하는 팀이 오지 않을까. 제인과 산호초, 잔류파, 데이드림

박성우 : 이제 다 나이가 많아서 안 올 거다. 하지만 난 꼭 가겠다. (웃음)

한국의 슈게이즈 씬이 커지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혹은 이 장르가 일시적 유행이 아닌 하나의 씬으로서 지속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파란노을 : 우선 이런 음악이 많아지면 저도 영감을 받아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슈게이즈가 찐따 음악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더라. 이런 흐름이 발전하면 좋아하는 사람도 더 많아지겠지만, 반대로 그런 이미지도 더 굳어지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예 이쪽을 쳐다보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씬으로 지속되려면 그런 소극적인 이미지를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찐따 음악 같은 이미지는 어디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

파란노을 : 꽉 차 있는 사운드의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리로 듣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무대 위에서 신발만 바라보는 소극적인 태도 때문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진짜 가사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생겼을 수도 있고.

박성우 : 혹시 본인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웃음)

방구석에서 음악을 만드는 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찐따가 꼭 나쁜 의미는 아니지 않나. 물론 나도 찐따다. (웃음) 근데 슈게이즈가 그런 이미지로 소비되는 건 잘 몰랐다. 파란노을이 한국 슈게이즈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으니까 그런 이미지도 같이 생긴 거 아닐까 싶다.

파란노을 : 내가 그렇게 과대평가 당할 사람은 아닌 거 같고, 케빈 실즈 때부터 전 세계적으로 있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한예솔 : 근데 그런 찐따미를 굳이 없애야 할까? 슈게이즈라는 단어 자체가 관객과 소통하고 호흡하기보다 내 신발만 본다는 건데, 그런 부분도 이 장르의 아이덴티티인 거 같다.

파란노을 : 지금 다시 얘기를 듣고 보니까 굳이 바꿔야 할까 싶기도 하다. 할 사람은 하고 바꿀 사람은 바꾸고. 둘 다 충분히 양립할 수 있지 않을까.

박성우 : 충분히 가능할 거 같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딜레이 릴레이 페스티벌’은 30년간 이어져 온 한국 슈게이즈 씬을 조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다. 그 필요성을 느낀 계기는 무엇인가?

제임스 : 코로나 이후 슈게이즈가 다시 주목받는 흐름이 생겼다. 이때를 놓치면 기존에 활동해 온 팀들과 언더그라운드 씬을 비출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딜레이 릴레이 페스티벌은 슈게이즈를 페스티벌이라는 형식으로 조금 더 쉽게 전달하면서, 언더그라운드 씬 특유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활동하는 아티스트와 개성 있는 공간이 존재하는 만큼, 그 매력을 잘 전달할 콘텐츠는 언제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슈게이즈 공연에서는 외국인 관객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어디서 비롯됐다고 보나?

제임스 : 슈게이즈 리바이벌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면서, 인디 공연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해외 리스너들이 자연스럽게 국내 슈게이즈 공연을 찾게 된 것 같다. 그런 흐름 속에서 공연장이나 씬 관련 정보도 다른 장르에 비해 비교적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히피토끼 포스트록 컴필레이션부터 딜레이 릴레이까지, 한국의 슈게이즈 씬을 기록하고 묶어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작업은 제임스에게 어떤 의미인가?

제임스 : 포스트록 컴필레이션은 국내에 오래 축적된 장르임에도 이를 아우르는 기록물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딜레이 릴레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필요성을 느껴 시작한 프로젝트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다기보다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인데 하는 사람이 없어서 하게 된 일에 가깝다.


앞으로 한국 슈게이즈 씬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졌으면 하는가?

이용준 : 크게 성장하지 않더라도 힙합처럼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리스너가 많지 않더라도 사라지거나 묻히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장르가 됐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기대를 안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파란노을 : 최소한 1년 정도는 더 뜰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아이돌화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본이 탄탄해야 하는데, 자본으로 팬을 만드는 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박성우 : 연대가 필요할 때는 연대도 하고, 커뮤니티도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도 멀리서 음악만 듣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었다. 그게 연대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예솔 : 저는 이게 분명히 마니아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이 듣다가 나중에는 창작자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제임스 : 씬이 지금보다 더 빛났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씬의 가치를 높이는 이벤트와 플랫폼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다양한 커뮤니티 속에서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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